[문화가 흐르는 한자]國語(국어)

  • 입력 2001년 4월 19일 19시 03분


‘國語’는 ‘國之語言’, 또는 ‘國之語音’의 준말로 ‘나랏 말’이다. 世宗大王이 訓民正音(훈민정음) 서문에서 ‘國之語音, 異乎中國…’(국지어음, 이호중국·나랏 말¤미 중국과 달라…)라고 하신 이후 누구나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國語는 본디 歷史, 곧 ‘國史’를 뜻했다. 옛날 孔子가 ‘春秋’를 짓자 左丘明은 ‘左傳’(일명 春秋左氏傳)을 지어 보충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미진하여 전혀 다른 스타일로 다시 쓴 것이 ‘國語’라는 책이다. 즉 종전의 編年體(편년체·역사를 연대순으로 기술함)를 탈피하고 國別로 기술했다.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453년까지 약 450년에 걸쳐 周, 魯(노), 齊(제), 秦(진), 鄭(정), 楚(초), 吳, 越(월) 등 당시 8국의 역사를 담았다. ‘여러 나라의 말’이라는 뜻이다. 諸國의 역사를 帝王과 신하들의 嘉言善語(가언선어·훌륭한 말)를 위주로 엮었기 때문이다.

國語가 현재의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南北朝時代로 당시 漢族은 남쪽으로 쫓겨나 있었고(南朝) 그 中原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北方의 다섯 오랑캐로 16개국이 할거하고 있었다(北朝·5胡16國). 이것을 한때나마 통일했던 오랑캐가 鮮卑族(선비족)의 北魏(북위 또는 後魏 386∼534)다.

하지만 中原을 다스리게 된 北魏가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알아듣는 이가 없었다. 오랑캐어와 중국어가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표준어를 정하여 ‘國語’라 하고는 교육시키게 되었는데 알고 보면 선비족의 ‘오랑캐 말’인 셈이다. 그 뒤로 國語의 개념은 왕조에 따라 바뀌어 元나라 때는 몽골어, 淸나라 때는 만주어가 되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韓 中 日 세 나라 모두 ‘國語’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실질은 판이하다. 同床異夢(동상이몽)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한 漢字 單語가 이처럼 판이하게 쓰이기도 드물다. 곧 國語는 거대한 國際方言인 셈이다.

그 ‘나랏 말’이 위기에 와 있다. 국내 최고라고 하는 서울대 신입생들의 국어 실력, 그것도 漢字 실력이 엉망이라는 보도다. 필자는 15년 전부터 느껴왔으며 진작부터 예견했던 바다. 교재에 등장하는 용어를 한글로 적어 읽기는 하는데 뜻은 모른다. 참 이상한 현상이다. 교수라고 例外(예외)가 아니다. ‘船團式 경영’의 말뜻을 물어온 교수가 있었다. 잘못된 語文政策,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 漢字를 알아야 한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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