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나폴레옹

  • 입력 2001년 4월 6일 18시 57분


◇"나는 내 왕조의 시조가 되겠다"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즈와의 사이에 혼담이 오갈 때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의 선조가 이탈리아 북동부의 소도시 트레비소를 통치했다는 내용의 족보를 만들고 싶어했다. 황제는 신분이 낮은 사람과의 통혼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나폴레옹은 황제에게 이렇게 답했다.

“나는 내 왕조의 시조가 되고자 합니다.”

1769년 코르시카 섬의 가난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온 유럽을 뒤흔들다가 1821년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된 채 쓸쓸히 삶을 마친 나폴레옹. 이 영웅의 파란만장한 삶은 단지 가문과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천재의 영웅담에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웅의 탄생은 바로 1789년 7월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에서 시민사회와 민족주의 및 절대왕권의 성립기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냉정하게 나폴레옹의 시대를 서술해 나간다. 그는 나폴레옹의 가계와 그 탄생에서부터 수많은 전쟁과 정치적 갈등을 거쳐 유배지에서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나폴레옹을 둘러싼 사실들을 철저히 고증해 낸다.

나폴레옹의 찬란한 승리들은 무기 제조기술의 발달에 따른 ‘화력의 증대’라는 새로운 국면을 ‘기동전’이라는 전술의 변화로 이끌어 낸 것이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라는 절대 왕권의 등장은 특권 귀족층의 파괴와 국가적 통합의 실현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만족을 모르는 독서가였던 그는 전투 중에도 이동도서관을 갖고 다닐 정도로 지적 욕구가 강했고, 그만큼 새로운 지식에 밝았다.

전쟁의 천재라는 그에게도 전투는 힘겨운 것이었는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든 것은 실행될 수 있다. 하지만 전투에 앞서 세워야 하는 계획은 언제나 긴장되고 고통스러운 절차였다. 나는 분만의 고통을 겪는 여인과 같았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이 나폴레옹의 천재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오히려 이런 사실의 분석을 통해 나폴레옹의 천재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드러낸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천재임을 알고 있었다. 너무 유동적이라 체계화하기 곤란한 ‘기동전’이 등장하자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전투의 전략과 시스템을 이야기할 때 나폴레옹은 이를 비웃었다.

“천재성이야말로 규칙 중에서 가장 훌륭한 규칙이다.”

하지만 뛰어난 천재성을 지닌 나폴레옹도 자신이 독단으로 흐르는 것을 스스로 막지 못했다. 그는 모든 권력을 자기 아래 두려 했고, 영국과 맞서며 대륙봉쇄에 집착함으로써 스페인과의 분규, 교황과의 불화, 러시아와의 전쟁 같은 파국을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는 비서가 프랑스 신문들을 읽어줄 때 “그냥 넘어가, 넘어가!”라고 말하곤 했다. “난 뭐가 실려 있는지 다 알아. 그들은 내가 시킨 말만 하거든.”

섬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손에 넣었던 그는 결국 섬에서 죽었다.

펠릭스 마크햄 지음 이종길 옮김, 447쪽 1만3000원 길산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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