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상원/'신문의 날'을 맞아

  • 입력 2001년 4월 6일 18시 57분


오늘(7일)은 신문의 날이다. 1896년 독립신문 창간으로 시작된 한국 신문의 역사는 이제 1세기를 훌쩍 넘겼다. 그 동안 숱한 어려움을 겪어온 우리 신문이 지금 또 다시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언론개혁'이란 이름 아래 신문은 매도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이것은 동아 조선 중앙 등 몇몇 신문만의 일이다.

▼권력비판기능 해체될 위기▼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지금 권력의 감시와 비판이라는 신문의 기능 그 자체가 해체 위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현상은 신문만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위기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신문은 자유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핵심적인 기둥이기 때문이다. 신문이 무너지는 것은 곧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무너지는 것이다.

오늘날 신문의 힘은 지난날보다 크게 위축됐다. 대신에 TV의 힘은 확대됐다. 결과적으로 정치적인 여론을 일으키는 데도 신문의 힘은 TV에 밀리고 있다. 그런데 이 TV라는 것이 우리의 경우 구조적으로 상당 부분 정치권력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그래서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지만 현재 정부의 여론조성 능력은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이를 견제하는 신문의 힘이 강화돼야 할 필요가 더욱 커졌다. 또 민주주의란 시민들의 숙고된 판단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신문은 숙고된 판단을 위한 다양한 정보와 논평을 제공하는데 아직은 TV보다 유리한 매체다. 민주주의를 위해 신문의 기능은 보다 강화돼야 한다.

지금 신문과 방송, 신문과 신문, 그리고 신문과 국민 사이에 불신과 증오가 조장되고 있다. 이 불행한 일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그것이 조세권이든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고시이든 정부의 공권력 행사가 언론 통제용이라는 의혹이 불식되고 국민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자제돼야 한다. 좋은 정부는 국민 사이의 분열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통합하는 일에 열심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언론개혁'은 지금부터라도 다음과 같은 몇가지 원칙 아래서 추진돼야 한다.

첫째, '언론개혁'이 언론자유 즉 자율적인 언론이란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언론자유는 우리 사회의 기본가치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다. 특히 정치적 언론의 자유 는 다른 종류의 자유에 우선한다. 따라서 '언론개혁'은 언론자유, 특히 정치적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그럴 위험성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공정위의 '신문고시' 제정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도 있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 그리고 정치적 정의와 경제적 정의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때 우리는 정치적 자유와 정의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언론의 원리다.

둘째, 우리는 '공공성'이나 '소수의견의 보호'와 같은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언론시장의 배분같은 경우에도 소수의견 등 불리한 조건에 있는 의견에 적절한 배려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유언론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셋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권력의 이성과 언론의 이성이 일치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서로 견제하고 경쟁할 때 안전하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이 점은 시민세력에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일할 것이다. 따라서 언론개혁 은 원칙적으로 언론계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정부나 정치권력의 개입은 안된다. 의회의 개입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언론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언론개혁 자율에 맡겨야▼

넷째, '언론개혁'은 급진적이어서는 안된다. 어떤 정책을 수행할 때 예상치 못한 일의 다산성(多産性)은 정치권력이나 정책엘리트의 분별력을 훨씬 능가하는 법이다. 따라서 '언론개혁'의 내용은 '얇은' 합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얇은' 합의는 자율적으로 가능하지만 두터운 합의에는 강제력이 따라야 하고 그것은 곧 언론을 죽이기 때문이다.

언론개혁과 관련해 정부나 정치권력은 지금 무리수를 두고 있다. 이것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를 성찰해 봐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흔히 오류는 좋은 정부에서나 나쁜 정부에서나 거의 똑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겸허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임상원(고려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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