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싱가포르]모든 학생 대상 영재 판별시험

  • 입력 2001년 4월 2일 20시 12분


'Moulding the future of our nation.’(우리나라의 미래를 만들자)

싱가포르 헨리파크초등학교. 학교 건물 신축공사가 한창인 이 학교 담장에 공사 시행자인 교육부는 이 같은 문구를 적어 놓았다. 국가의 장래를 책임질 인재를 키우겠다는 싱가포르 정부의 의지를 느끼게 했다.

4∼6학년 각각 2개 학급씩 모두 6개 학급(119명)의 영재반을 운영하고 있는 헨리파크 초등학교의 5학년 영재반 영어시간. 교사가 들어서자 26명의 학생이 모두 일어나 머리를 깊숙이 숙이면서 큰 소리로 “굿 모닝, 미스 매들린”이라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거리가 더러워질까봐 껌의 수입을 금지하고 침만 뱉어도 어김없이 벌금을 물리는 나라에 어울리는 엄격함이 절로 느껴졌다.

수업이 시작되자 교실 분위기는 자유분방하게 반전됐다. 학생들이 모두 칠판 앞 교실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고 교사는 마치 놀이하듯 수업을 이끌었다.

▼글 싣는 순서▼

  -1부 영재교육-

1. 미국
2. 싱가포르
3. 호주
4. 중국
5. 이스라엘
6. 한국

“자, 오늘은 어느 팀이 먼저 범인을 제대로 찾아낼까?” 매들린 교사가 살인사건의 현장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추리 문제를 내자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다투어 손을 들고 용의자를 찾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퍼붓던 학생들은 교사가 몇 가지 단서가 적힌 자료를 나눠주자 5, 6명씩 조를 짜 토론을 벌였다.

떠들썩해진 교실은 매들린 교사가 “라훌, 투 시 엠”이라고 짤막하게 말하자 이내 조용해졌다. 언어능력이 뛰어나 말을 잘하는 라훌군(11)이 지나치게 큰 소리로 떠들며 말하자 목소리를 ‘2㎝’ 정도 낮추라고 주문한 것.

하지만 매들린 교사는 비록 교실이 시끄러워지더라도 ‘떠들지 말라’고 강압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매들린 교사는 간간이 ‘물증을 찾을 것’ ‘관찰 촉각 시각 후각 활용’이라고 칠판에 적으며 토론의 방향을 잡아줬다.

일반학급은 학생 수가 40명에 가깝고 추리문제를 풀더라도 교사가 학생과 간단한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재학급은 스스로 문제를 찾아가게 하는 문제해결력을 중시한다. 영재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보다 진도가 2, 3년 빠르다.

영재 학생들의 상담도 맡고 있는 매들린 교사는 “영재 학생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100%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괴감”이라며 “이 때문에 집단토론 체육 등 단체활동과 인격함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영재 판별시험을 통해 ‘영재’를 가려낼 정도로 ‘인재 양성’에 열정을 쏟고 있다.

싱가포르에는 초등학교가 약 200개교, 중학교(Secondary School)는 약 160개교가 있다. 이 가운데 영재학급을 운영하는 학교는 초등학교 9곳과 중학교 7곳 등 16개교. 싱가포르의 교육정책으로 미뤄 볼 때 몇 개의 별도 영재학교가 있을 법하지만 영재 학생도 정서함양을 위해 일반학생과 어울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 영재학교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

영재학습을 위한 교재도 따로 없다. 일반 학급(main stream)과 똑같은 교과 및 교육과정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6년(Primary)―4년(Secondary)―2년(Junior Collage·예비대학)’으로 짜여진 교육과정에 맞춰 초등학교졸업시험(PSLE)과 중학교졸업시험(GCE ‘O’ Level Test)을 일반학생과 같이 치르도록 했기 때문.

러나 다수의 영재학급에서는 정규 수업 외에 개인조사연구(IRS·Individualized Research Study)와 현장조사 캠프 등 다양한 심화 및 특별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IRS는 주로 매주 금요일 방과후에 한시간 가량 이뤄지고 있다. 초등학교 4, 5학년과 중학교 1∼3학년 때 영재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맞춰 ‘헤어스타일’ ‘UFO’ 등 다양한 주제를 정한 뒤 도서관을 찾거나 실험 및 조사를 통해 보고서를 쓰면서 나름대로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이때 교사와 전문가의 도움을 얻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전문가와 같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과 창의적으로 문제를 푸는 능력 등을 기르게 된다.

싱가포르 영재교육은 공식적으론 중학교를 졸업하는 10학년까지만 이뤄진다. 그러나 주니어칼리지와 대학에서도 과학탐구 예술 인문 등 특정 영역에서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에게는 정부와 대학들이 공동 운영하는 여러 가지 영재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84년 영재교육이 처음 시작됐을 때부터 래플스 난양 헨리파크 초등학교 등 3곳을 거치며 17년째 영재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책임교사 루포겡은 “영재학급은 좀더 정밀한 공부와 많은 실험 등으로 깊이 있는 학습을 꾀하는 게 특징”이라며 “교사들은 매주 한차례씩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을 통해 영재교육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김경달기자>d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