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arts]영화속 남성상 변화…요즘엔 '퓨전사나이'

  • 입력 2001년 3월 8일 18시 36분


영화 ‘람보’가 유행하던 시절 미국 대중문화는 남자들을 ‘근육질의 전사’ 아니면 ‘샌님’으로 분류하곤 했다. 당시 대중은 여성문제에 민감하다고 생각되는 샌님을 조금 더 선호했다.

그러나 문화가 보수적인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졌다. 레슬링과 투박한 록음악을 좋아하는 사나이들이 다시 영화의 전면에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샌님들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덧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샌님들은 감수성을 숨기기 위해 전투복이나 농구 유니폼을 입었다.

그 결과 전통적인 남성다움과 부드러움이 결합된 새로운 남성상이 나타났다.

영화 ‘랜섬’에서 멜 깁슨(사진)이 마구 눈물을 흘리다가도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 ‘왓 위민 원트’에서 바람둥이 깁슨이 여자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후 여자들과 공감하는 법을 배워 가는 모습 등이 좋은 예이다.

지난해 발표된 4편의 영화 ‘프리퀀시’ ‘타이탄을 기억하라’ ‘맨 오브 오너’ ‘포레스터 찾기’ 역시 이런 남성상을 보여주었다. 이 새로운 남성상은 가히 ‘퓨전 사나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만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또 이 영화들은 흑인 주인공을 긍정적인 역할모델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도 찬사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흑인 영웅이 백인 동료들의 인정을 받으려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 외에 마치 성자 같은 인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암시한다.

게다가 백인이든 흑인이든 단순히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거친’ 분야에서도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내비친다. 그래야만 부드러움을 겉으로 드러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포레스터 찾기’의 주인공 브라운씨(숀 코너리)가 명문 사립학교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문학적 재능 때문이 아니라 뛰어난 농구실력 덕분이었다. 그의 두뇌는 남자다운 육체를 꾸미는 장식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http://www.nytimes.com/2001/02/18/arts/18HOL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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