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디지털콘텐츠 법적 보호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8시 47분


▲김하진(왼쪽)·전문영
▲김하진(왼쪽)·전문영
디지털 벤처산업의 회생 발전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디지털콘텐츠산업육성법 제정이 관련 정부 부처 및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첨예한 이견대립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법 제정 찬성론자들은 정보산업시대에 세계적인 비교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지름길이자 가장 효율적인 투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디지털콘텐츠를 일방적으로 보호하려는 시도는 저작권법 등 기존의 법체계에 혼란만 초래할 뿐 관련산업 육성 취지를 살릴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찬성/무단복제 막아야 중소벤처 생존▼

우리나라 인터넷 인구는 올해 말 1480만명으로 세계 7위에 오를 것이라고 미국의 인터넷 시장조사업체인 티포캐스츠가 6월 발표한 바 있다. 인터넷세계의 핵심은 통신기술과 컴퓨터, 소프트웨어인데 디지털콘텐츠는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문명의 전달수단이 필름 종이 라디오 인쇄술이었다면 디지털시대에서는 컴퓨터가 판독할 수 있는 단위인 비트(0과 1)에 의해서 문명과 정보가 전달된다. 디지털기술이 인간의 생활과 사고를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기술에 의해 생성되는 다양한 내용을 디지털콘텐츠라고 하는데 디지털콘텐츠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나타난 전혀 새로운 표현체인 것이다. 이 디지털콘텐츠 분야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중점 육성해야 할 미래산업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콘텐츠 분야를 보호 육성하기 위한 법적, 정책적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특히 디지털기술로 변형해 제작한 다양한 콘텐츠들은 법적 보호를 필요로 하고 있다. 현행 저작권법은 창작성이 있는 저작물을 보호하고,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프로그램이라는 한정된 객체만 보호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기술의 특성상 빠른 변형과 가공이 용이하므로 많은 인터넷기업들이 제작한 디지털콘텐츠의 법적 보호가 논의돼야 한다.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경제를 부양할 수 있는 디지털환경에 맞는 새 법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지금 현실은 디지털업체들이 콘텐츠를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 상품화하다가 이를 다른 업체가 약간 가공해 판매해도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돼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1∼2년 이상 걸리는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나 대부분의 영세 중소벤처기업들이 구두나 서면통지로 해결하려다가 분쟁에 휘말려 많은 비용을 날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하나의 콘텐츠가 잘되면 법적 권리가 미비한 점을 악용해 재력가들이 이를 복사해 동종영업을 하는 등 국가적으로 불필요한 중복 투자가 남발되고 있다. 숱한 중소벤처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 상품을 마음놓고 시장에 내놓을 수 없거나 모방제품이 활개치며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다면 경제정의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21세기 국가경제의 명운을 건 디지털업계의 활로를 열기 위해서는 디지털콘텐츠산업을 보호 육성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하루 속히 제정해 창의성 있는 기업들이 마음놓고 사업할 수 있도록 토양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런 산업진흥관련법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콘텐츠 제작자의 권리 보호가 원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는 보완돼야 할 것이다. 제작자와 저작자의 권리가 동등하게 존중되는 풍토에서 인터넷기업들이 희망과 의욕을 가지고 디지털콘텐츠 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는 종합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김하진(아주대교수·컴퓨터 그래픽스학회장)

▼반대/저작권법과 충돌 …정보제한 우려▼

디지털콘텐츠산업육성법안은 가까스로 정착 기미를 보이고 있는 저작권법 등 기존 법체계를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을 내포하고 있다. 이 법안은 디지털이라는 수단을 보호의 기준으로 정하고 디지털콘텐츠 일반에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콘텐츠사업자의 권리만 고려한 나머지 이용자의 정보 향유권 측면이 무시되고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이용하여 발전된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려는 신규 참여자를 제약함으로써 중요한 콘텐츠를 선점한 일부 기득권자에 의해 정보가 차단되는 등 정보산업의 발전이 저해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국제적인 협의 없이 우리나라에서만 디지털콘텐츠를 보호하는 입법이 이루어지면 외국과의 관계에서 상호적인 법 적용이 이루어지지 않고 국내에서만 강요되는 법 적용으로 인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디지털콘텐츠를 별도로 보호하는 법조문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일이다. 디지털화가 먼저 시작됐고 이미 상당히 산업화된 선진국에서도 디지털콘텐츠를 저작물 등과 독립해 별개로 보호하고 있지 않으며 기존법의 해석 내지 보완을 통해 규율하면 족하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법안이 디지털콘텐츠의 내용이 아니라 그 수단인 디지털 여부에 보호의 기준을 둔다는 것은 많은 모순을 자초하게 된다. 만약 디지털이라는 기술적 수단을 보호하자는 것이라면 기술적 수단이 갖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 이해관계인을 고려해 보호 범위를 정해야 마땅하다. 보호를 위한 방법 또한 기존의 저작권법 등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를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무조건 별도법 제정부터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 법안은 기존의 저작권법과 정면으로 충돌해 평지풍파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저작권법은 창의성과 같은 일정한 기준에 의해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저작권이나 기타 저작인접권으로 보호하고 그 외에 보호할 가치가 적은 것은 일반인이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가치를 기준으로 한 저작권의 보호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을 갖고있는 디지털콘텐츠를 저작권법 등 기존법과 같은 위치에다 평면적으로 입법하려고 하는 것은 기존의 저작권 등에 의해 쌓여온 이해관계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부분의 디지털콘텐츠 사업자는 기업의 활동과 수익을 연결시키는 사업구조를 정착시키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지 디지털콘텐츠의 무단복제 때문에 현재와 같은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은 아니다. 디지털콘텐츠 사업자를 살린다는 목적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다른 법과 상충하는 입법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히 디지털콘텐츠 보호문제는 저작권법 등 기존법의 울타리 내에서 논의돼야 할 사안이다. 기존법과 충돌하는 모난 입법 시도는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전문영(변호사 ·한국음반협회 자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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