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합병반발? 큰 그림 보자

  • 입력 2000년 12월 27일 18시 55분


지난해 10월14일 일본 스미토모은행과 사쿠라은행은 2002년 4월까지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니시카와 요시후미(西川善文)스미토모은행장은 기자회견에서 “사쿠라은행과는 오랜 경쟁관계지만 국제 금융재편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합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두 은행은 합병 후 5년 간 9000여명의 인원을 줄이고 점포 100∼120개를 없애기로 했다.

이 발표는 일본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두 은행이 오랜 라이벌 관계였던 스미토모그룹과 미쓰이그룹의 중심축이었기 때문이다. 스미토모은행은 오사카 등 관서지방, 사쿠라은행은 도쿄 등 관동지방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지역적으로도 갈려 있었다.

일본 금융계에는 이런 ‘짝짓기 열풍’이 지난해 거세게 불었다. 8월에는 다이이치칸교, 후지, 닛폰코교은행 등이 2002년 봄까지 지주회사 형태로 통합, 총자산 141조엔(약 1551조원)규모의 세계 최대 금융그룹을 발족키로 합의했다.

당시 기자는 도쿄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잇따른 은행합병 발표 후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고용문제와 직결되는 계획이 전격적으로 발표되는 데도 해당 은행원의 집단적 반발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21세기 은행의 경쟁력을 좌우할 정보기술(IT) 투자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마련 등을 위한 재편의 당위성을 인정하고 발전적인 방향에 관심을 쏟았다.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발표 후의 파업 ‘풍경’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은행원들의 고용불안을 모르는 바 아니다. 정부 및 은행경영진의 일부 서투른 행동에 대한 반발성격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세계적 흐름을 감안할 때 이런 식의 극한적인 노사투쟁이나 노정(勞政)대치가 유일한 해법일까 하는 의문을 버릴 수 없다.

경제문제가 너무 자주 정치 사회적 문제로 성격이 변질될 때, 또 각 경제주체가 자신들 문제에 매몰돼 ‘큰 그림’을 보지 못할 때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권순활 경제부 기자>shkw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