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박원재/'시한폭탄' 경제관료 입

  • 입력 2000년 12월 7일 18시 57분


최근 느닷없이 불거진 자금 악화설을 가라앉히느라 고생한 LG그룹 임원 A씨. 그는 지금도 ‘LG 위기설’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금융감독원 간부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다.

이 간부가 지난달 중순 “LG그룹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위기설이 증폭됐기 때문. 현대사태가 일단락된 직후 금융당국의 고위 관료가 4대그룹 중 하나인 LG를 거명한 것 자체가 미묘한 파장을 불렀다.

‘LG도 어렵다더라’는 식의 루머가 금융시장에 퍼지자 금감원은 뒤늦게 “근거 없는 헛소문”이라며 유포세력이 밝혀지면 엄중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LG측은 냉담했다. ‘병주고 약주는 격’이라는 항변 섞인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A씨는 “문제가 없으면 거론을 안 하면 그만인데, 어설픈 발언 탓에 피해를 뒤집어썼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서민금융기관인 상호신용금고 업계는 “금고 사고가 한두건 더 터질 것이라는 이기호 대통령경제수석의 한마디가 서민 돈줄을 마르게 했다”고 원망한다. 가뜩이나 정현준―진승현 게이트로 뒤숭숭한 터에 ‘이 방 안에 범인이 있다’는 식의 이수석 발언까지 나오자 모든 신용금고의 영업장 분위기가 더 흉흉해졌다고 하소연한다.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이 포드사가 대우자동차 입찰 때 써낸 금액을 발설한 것은 아직까지 한국경제에 부담으로 남아 있다. 국제협상에 정통한 H그룹 임원 B씨는 “그 순간 협상은 깨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단언했다.

재계는 관료들의 실언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발언 당사자의 소아병적 영웅심리를 꼽는다. 전경련 이승철 기획본부장은 “한국처럼 관의 입김이 센 나라에서 관료가 실언을 하는 것은 증시로 치면 불성실 공시나 허위공시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허위공시를 하면 증권거래법상 기업이 처벌을 받지만 관료들이 무심코 내뱉은 발언으로 기업과 금융기관을 골병들게 하고도 책임을 진 사례는 없다.

<박원재 경제부>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