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전화변론’

  • 입력 2000년 12월 6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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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업한 검찰 고위직 출신의 한 변호사 사무실을 얼마전 찾아갔다가 우연히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이 변호사가 전화했었다는 메모를 본 한 후배 검사가 전화를 걸어온 것.

“나 ○○○변호사요. 하하하, 잘 있었나. 다른 게 아니라 사건이 하나 들어왔는데 상의할 것이 있어서…. 식사하고 잠깐 들르겠다고? 알았어.”

사적인 통화 내용에 대해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후배 검사는 이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을 수사하거나 지휘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검사로서는 개업한 선배를 방문해 인사라도 할 생각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두 선후배가 ‘정답게’ 마주앉아 사건과 관련한 부탁과 설명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은 검찰청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검사를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오게 하는 경우는 아주 이례적이라 하더라도 대개의 경우 후배들에게 전화 한 통이면 ‘변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MCI코리아 대표 진승현(陳承鉉)씨의 변호사처럼 이런 변론의 대가로 억대의 돈이 수임료로 건네진다. 그러나 이들은 검찰에 정식 선임계를 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후배를 통해서도 사건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돈을 돌려줘야 하는 데다 선임계를 내 정식으로 이름이 오르면 봐주는 쪽에서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은밀한 변론은 변호사법 위반이다. 또 변호사 윤리강령 20조도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는 전화 문서 방문 등 어떤 방법으로도 변론활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전관예우’의 관행이 ‘실체적 진실’과 법률시장의 질서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검찰 조직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후배가 서로 신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변호사가 ‘룰’을 어기면서까지 후배 검사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는 것은 범죄행위이자 사라져야 할 나쁜 관행이다.

신석호<사회부>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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