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문철/작은 것 감추려다…

  • 입력 2000년 12월 3일 19시 43분


2일 저녁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 대한 당 안팎의 관심은 높았다.

우선 “민심을 제대로 전하겠다” “고강도 처방을 건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최고위원들이 과연 대통령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말했는지가 관심사였다. 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이들의 진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관심사였다.

이날 최고위원 회의는 무엇보다도 전날 경기도 업무보고에서 “경제가 나빠진 데 대해 대통령으로서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국민에게 사과하고 경제회복을 다짐한 김대통령의 시국 인식과 국정쇄신 구상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회의 후 민주당 박병석(朴炳錫)대변인은 회의 분위기가 진지했음을 전하면서 “가감 없고, 성역 없이 얘기했다”고만 말했다. 더욱 문제는 회의내용에 대해 일절 공개하지 않기로 한 최고위원들 간의 함구 약속. 이는 기대만 잔뜩 부풀려놓고 시침을 뚝 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불만이 적지 않다. 한 당직자는 3일 “대통령과 최고위원들의 현실 인식과 국정쇄신 방안을 알고 싶어하는 국민과 당원의 바람을 당 지도부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당 지도부의 현실 인식과 국정쇄신 방안에 대한 국민과 당원의 공감대가 형성될 때에만 희망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라며 보다 적극적이고 공개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최고위원들에 대한 실망도 표출됐다. 임명직도 아니고 당원들의 표로 선출된 이들이 국민과 당원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발언록을 공개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였다.

그러나 최고위원들은 “너무 충격적인 얘기들이 있어서…” “최고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내용을 잘못 전달할 우려가 있어서…”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건 작은 것에 대한 집착처럼 들렸다. 국민이 여당에 대한 믿음을 쌓을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이 여당에 있을까.

문철<정치부>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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