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사람들은 대개 한약을 기력을 보충하기 위한 보약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한방 의료 역시 인간의 생존을 둘러싼 절박한 필요 속에서 발전해 온 학문이다. 질병은 일상의 불편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이었다. 의학은 그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기록과 실천의 축적이다. 한의학의 출발점이자 중국 최고(最古)의 고전 의서로 꼽히는 ‘상한론(傷寒論)’의 저자 장중경은 삼국지의 무대가 된 후한 말, 적벽대전의 시대를 살아간 관료이자 의학자였다. 당시 사회를 휩쓴 전염병에 맞서기 위한 그의 대응과 처방이 한방 처방 체계의 출발점이 됐다.
장중경은 ‘상한론’에서 “상한병(독감 같은 전염병류)이 유행해 일족 200명 가운데 3분의 2가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오늘날로 치면 그는 독감이나 페스트류의 전염병으로 인해 가족과 친족이 속절없이 쓰러져 가는 현실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상한론’은 바로 그렇게 죽어가는 피붙이들을 살리기 위해 축적된 처방의 기록이었다. 이 책에 제시된 상한 치료의 주요 처방 약물은 마황이다. 마황은 갈근탕, 마황탕, 소청룡탕, 대청룡탕, 월비탕 등 여러 처방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약재 중 하나다.
마황에 내재된 강력한 약성은 현대의학에서도 증명됐다. 일본 도쿄대의 나가이 나가요시 교수는 마황에서 에페드린을 발견하고 이를 합성했다. 1923년부터 에페드린은 천식과 기침 치료제로 임상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각성제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는 에페드린을 합성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약물이 바로 메스암페타민, 이른바 필로폰이다. 이는 마황이 호흡기뿐 아니라 신경계 전반에 강력하게 작용하는 약물임을 현대의학적으로도 확인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마황은 본래 몽골 지역이 원산지로, 조선 세종 때 이미 국산화를 시도한 기록이 남아 있다. “경상 감사가 경상도 장기현에서 난 마황을 진상했는데, 당(唐)나라 마황과 다름없었다. 임금이 이를 가상하게 여겨 마황을 실제로 재배한 자에게 옷 한 벌을 하사했다.”(세종 20년)
그러나 조선 인조 대에 이르러서는 마황 관리가 허술해지면서 재배가 버려지기도 했다. “조종조에서는 감초와 마황을 중국에서 사와 8도에 나누어 심게 한 뒤 매년 정성을 다해 가꾸었으나, 수십 년 전부터 중단된 곳이 많다”는 기록이 이를 전한다.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는 볼모로 조선을 떠날 때부터 심양에서의 억류 기간 동안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로 여러 질병에 시달렸다. 특히 감기가 잦아지며 기침으로 고생했다. 당시 의관들은 이를 치료하기 위해 화개산 등을 처방했는데 여기에 마황이 포함돼 있었다. 1645년 한양에 돌아온 직후에도 소현세자는 심한 기침과 천식, 가래, 고열로 큰 고통을 겪었다. ‘승정원일기’에는 소현세자의 가래 등 여러 증상이 마황이 들어간 해표이진탕(解表二陳湯) 3첩을 복용한 뒤 크게 호전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기도 내 이물질과 분비물을 섬모 운동을 통해 위쪽으로 운반하고, 기침으로 가래를 배출하는 것은 호흡기의 정상적인 청소 작용이므로 무조건 억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생리적 범위를 넘어 음식 섭취와 수면을 방해할 정도라면 근본적인 치료가 우선 돼야 한다. 한의학은 기침을 건성기침과 습성기침으로 세밀하게 구분하고, 초기 단계이거나 습성기침 천식의 경우 마황이 포함된 처방으로 치료를 도모해 왔다. 원인에 따른 적절한 처치를 중시하는 점은 한의학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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