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내친구]'늦깎이 골퍼' 약사 홍기정씨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9시 10분


“손목을 꺽지 마라 룩 앳 더 볼.헤드업을 하지 마라 룩 앳 더 볼. 어깨 회전으로 룩 앳 더 볼.오버스윙하지마라 룩 앳 더 볼….”

예순이 넘어 골프채를 잡은 홍기정씨(64·서울 충정귀약국 약사)가 만든 ‘룩 앳 더 볼(Look at the ball)’이란 제목의 노래다.

골퍼라면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차원을 떠나 항상 몸에 체득하고 있어야 할 필수요소만을 가려내 만들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 한달에 한두번 골프장을 찾는 그는 동반자들과 함께 첫 번째 홀로 이동하는 순간부터 특유의 민요조 리듬으로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의 노래는 18홀을 다 도는 순간까지 동반자들의 귀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그와 함께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노래는 또 있다. 모든 골퍼의 꿈이라는 홀인원에 대한 염원을 담은 ‘홀인원송’이다. 가수 문희옥이 부른 ‘성은 김이요’란 곡에다 가사만 바꾼 것.‘…헤드업 하지마라. 어깨힘을 빼고서 손목꺽지 말고 공을 똑바로 보라고 하네요. 두팔을 쭉뻗어 쳤건만 슬라이스가 됐어요. 뒷땅을 쳤어요. 굿샷이 안되네요. 그러나 꼭 한번은 홀인원을 하고 말거야. 홀인원 홀인원’으로 끝나는 이 노래를 듣다보면 평생 홀인원을 못해 본 사람도 한번쯤은 자신이 직접 홀인원을 해 본 것 같은 감흥에 젖게 된다는 것.

그의 골프실력은 90―100타 사이.고수의 입장에서 보면 ‘햇병아리’에 불과한 그가 노래까지 지어 부르며 동반자에게 ‘훈수’를 두게 된 것은 우선 4,5시간동안 함께 운동하는 골프의 특성상 재미가 우선이 돼야 한다는 지론때문.또 아무리 오랫동안 골프를 배운 사람들도 실제 필드에 서면 평소 배운 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 것도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여유를 갖고 골프장을 찾은 것은 아니다.골프채를 잡은 뒤 첫 1년은 골프장을 찾을때마다 ‘오늘은 과연 몇 타를 칠 수 있을까’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그러다 보니 자연과 함께 하는 골프의 참맛을 느낄 여유도 없었고 골프장에서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아오는 과정이 반복됐다.

결국 2년째부터 “이 나이에 잘 쳐 뭐하나”는 깨달음과 함께 스코어를 무시하기로 작정했고 그래도 골프의 기본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핵심원리만을 담은 노래를 만들게 된 것.

전북 고창출신으로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그는 돌을 지날 무렵 중이염을 앓아 왼쪽 귀의 청력을 잃고 오른쪽 귀도 반정도밖에 들리지 않는다.약대에 다닐 때까지 귀에서 고름이 흐를 정도였고 서른이 될 무렵 스스로 자신의 귓병을 고쳤다.이후 홍씨는 ‘귀박사’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이런 명성과 부도 골프만큼 희열을 가져다 주고 재미있지는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

“골프를 즐기기전까지 등산으로 건강을 유지했지만 골프를 시작한 뒤 높았던 혈압이 정상을 되찾았다”는 그는 “나이들며 점점 게을러져 등산이나 다른운동은 등한시하게 됐지만 골프를 시작한 뒤 매일 연습장을 찾아 운동할 만큼 재미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김상호기자>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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