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너티브]동인 ‘혜화동 1번지’

  • 입력 1999년 10월 25일 20시 01분


자본을 앞세운 대형뮤지컬, 5분마다 관객을 웃기는 코미디, 눈요깃거리로 손님을 끄는 뒷골목 외설연극…. 흥행을 의식한다는 의미에서 ‘상업성과의 타협’으로도 불린다. 작가가 하고 싶은 연극을 어디서 할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젊은 연출가들의 끼와 개성을 맘껏 살려 주는 얼터너티브(대안) 공간이다. 번잡한 대학로에서 살짝 벗어난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의 주유소 뒷 골목. 40석 밖에 안되는 객석, 대학로를 돌아다니며 주워모은 소품들이 무대를 채우고 있는 허름한 소극장이지만 뭔가 새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김광보 박근형 손정우 이성열 최용훈. ‘혜화동1번지’는 소극장 이름이기도 하지만 98년부터 이 소극장을 운영하는 30대 연출가 동인(5명)을 통칭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혜화동1번지’의 힘은 ‘젊음’과 ‘저예산’으로 가능한 실험극에 있다.

▼책상등 주워다 무대꾸며▼

대학로소극장에서는 편당최소 2000만∼3000만원의 제작비가 들어가지만 이곳의 평균 제작비는 500만∼700만원. 재활용의 귀재인 박근형은 ‘쥐’를 공연할 때 거리에서 주운 싱크대 책상 난로 등으로 12만원에 무대를 훌륭히 꾸미기도 했다. 덕분에 관객이 웬만큼 오면 망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연출가의 실험적인 아이디어와 숨소리까지 들리는 배우들의 꾸밈없는 연기로 승부할 수 있다.

지난 여름엔 ‘계절연극’의 아이디어로 ‘공포’를 주제로 한 단막극 5편을 옴니버스식으로 공연했다. 이른바 ‘공포연극제’. 98년에는 ‘수족관 가는 길’ ‘줌 인’ ‘만두’ ‘열애기’ ‘그림쓰기’ 등의 이미지가 강한 작품을 번갈아 무대에 올렸다. 이 무대들은 40석의 객석에 평균 79명이 끼어앉을 정도로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며칠전 이들은 내년 활동계획을 세웠다.

“페스티벌도 했고, 옴니버스 연극도 해봤으니 내년엔 5명의 합동연출로 공연해 보면 어떨까요.”

93년 출발한 ‘혜화동 1번지’의 1기 동인은 김아라 이윤택 기국서 채승훈 박찬빈 이병훈 류근혜 황동근 등 40대 연극인. 이들은 중견이 되자 미련없이 30대 ‘젊은피’에게 물려주었다. 2기 동인도 지난해와 올해 동아연극상(최용훈) 백상예술대상(이성열, 김광보) 청년대상(박근형) 등의 각종 연극상을 받았다. ‘혜화동1번지’는 한국 연극의 10년 뒤를 책임질 연출가의 ‘인큐베이터’로 자리잡았다.

“실험이란 거창한 게 아닙니다. 각자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있는 무대가 보장된다면 그것이 실험연극이 아니겠습니까.”(손정우)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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