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윙∼’귓속 소리… 귀 질환 아닌 뇌가 보내는 잡음일 가능성[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동아일보
입력 2026-03-10 23:002026년 3월 10일 2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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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신경계 오류가 부르는 이명
전 세계 7억명 이상 겪는 흔한 질환…난청-청각세포 손상되면 뇌가 보상
외부 소리 없어도 ‘가짜 소리’ 생성…만성 이명 땐 불안,우울,치매 위험
현재 치료는 증상 완화 중심 한계…뇌 신경계 파악하면 근본치료 가능
《2018년 개봉된 영화 ‘스타 이즈 본’의 주인공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 분)은 미국의 스타 컨트리 가수이지만, 공연 활동으로 인해 큰 음향에 오래 노출되면서 이명과 청력 상실을 겪고 있다.
이명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며 술과 약물에 의존해 알코올 및 약물 중독에 시달리고 있다.
주인공이 겪는 이명은 외부의 소리 자극이 없음에도 귀나 머릿속에서 ‘삐’나 ‘윙’ 같은 기계음, 매미 소리, 바람 소리 등의 잡음이 느껴지는 증상을 말한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이명은 세계적으로 7억4000만 명 이상이 앓는 매우 흔한 질병이다. 성인 인구의 14%, 나이가 들면서 20%까지도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된다.
이명의 심각도는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에 따라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조용한 곳에서만 들리며 일상 대화나 집중력에 지장이 없는 단계 △소음이 있는 곳에서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가끔 잠들 때나 조용한 작업을 할 때 신경 쓰이는 단계 △주변 소음이 있어도 소리가 들리며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고 불안감을 느끼는 단계 △하루 종일 소리가 들리고 수면장애,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으로 일상 수행이 불가능한 단계다. 영화 속 잭슨 메인은 알코올 및 약물 중독으로 이어질 만큼 고통이 주는 심각한 증상이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다.
이명은 크게 자각적 이명과 타각적 이명으로 나눌 수 있다. 자각적 이명은 환자 본인에게만 들리는 소리로 전체 이명의 80∼90%를 차지한다. 달팽이관이나 청신경 손상으로 ‘삐’나 ‘윙’ 같은 소리, 매미 소리가 들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이 근육이나 구개근 경련으로 인해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경우도 포함된다. 타각적 이명은 실제로 신체 내부에서 소리가 발생해 타인도 들을 수 있는 이명이다. 타각성 이명에는 귀 주변 혈관이나 구조적 이상으로 인해 심장 박동과 일치하는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박동성 이명이 포함된다.
이명은 귀 내부 구조물 손상, 청신경 이상, 뇌의 소리 처리 오류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다. 귀 내부 구조물 이상에는 이석증, 메니에르병, 만성 중이염 등이 있다. 그 외에도 고혈압, 빈혈, 갑상샘 기능 항진증·저하증, 턱관절 이상, 뇌신경 종양 등으로 인해 박동성 이명이 발생할 수 있다.
이명의 가장 흔한 원인은 난청이다. 소음을 많이 듣거나(소음성 난청) 나이가 들면서(노인성 난청) 청각세포가 손상될 경우 뇌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보상하기 위해 가짜 소리(이명)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심한 스트레스나 과로, 수면 부족도 뇌와 신경을 과도하게 긴장시켜 이명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 특정 항생제, 항암제, 아스피린 등을 장기 복용할 경우에도 청각 기능 손상으로 인해 이명이 생길 수 있다.
이처럼 이명은 직간접적으로 뇌 신경계 손상과 관련된 질환인 경우가 많다. 청신경이나 청각세포가 손상되면 뇌는 소리 정보를 받지 못해 이를 보상하기 위해 불필요한 신경 신호를 만들어 낸다. 만성 이명은 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 신경회로상의 문제(중추신경계 과민성)를 유발한다. 박동성 이명(심장 박동처럼 들리는 소리)도 경동맥 협착, 뇌동맥류, 뇌종양 등 뇌혈관 질환의 위험신호일 수 있다. 또한 만성적인 이명과 난청은 뇌 자극 감소와 사회적 단절로 이어져 치매 위험을 2, 3배 높이는 등 다른 뇌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현재 이명 치료는 완치보다는 증상 완화와 적응을 목표로 한다. 이명 재훈련 치료, 소리 치료, 인지행동 치료가 사용된다. 이명 재훈련 치료는 소리 발생기나 상담을 통해 이명 소리를 뇌가 중요하지 않은 소리로 인식하게 해 불편함을 줄이는 방법이다. 소리 치료는 난청이 동반된 경우 보청기를 통해 외부 소리를 크게 들려줘 이명을 덜 느끼게 한다.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더 건강한 행동을 배우게 하는 인지행동 치료는 이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불안을 줄여줘 스트레스를 조절한다. 약물 치료는 내이 혈액순환 개선제나 불안, 우울을 줄이는 항불안제 등을 사용해 이명에 대한 민감도를 낮춘다. 뇌 신경계의 문제를 직접 파악하고 치료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기술로는 어려웠기 때문에 이명 치료는 뇌 신경계 문제의 영향을 완화하는 간접적인 치료에 머물러 있다.
잭슨 메인은 심각한 이명 증상에도 치료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알코올과 약물에 의존해 고통을 달래려 했다. 이는 중독으로 이어졌고 그에 따른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명으로 인한 고통은 중독 외에도 불안감, 수면장애, 우울증, 대인기피증, 치매 같은 다른 심각한 뇌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명은 상당 부분 청신경 이상이나 그로 인한 뇌 신경계의 소리 처리 오류로 인해 발생한다. 따라서 뇌 신경계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치료할 수 있다면 직접적인 원인 제거를 통한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치료가 가능한 미래를 꿈꾸게 한다.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은 우리를 중독이나 우울증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피부에 난 상처를 꿰매듯이, 뇌의 질환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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