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부주도 금융지주회사 '거대한 부실' 우려

  • 입력 2000년 10월 30일 18시 50분


신한은행이 내년 3월 설립을 목표로 30일 금융지주회사 설립 사무국을 설치했다. 산업은행은 이보다 빠른 올 연말 금융지주회사의 첫 테이프를 끊는다.

자발적인 금융지주회사의 태동으로 2차 금융구조조정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주도로 추진되는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금융지주회사 설립에 대해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거대한 부실 금융기관 탄생’에 대한 우려다.

우량은행간 합병도 정부의 종용에 못이겨 각 은행이 시늉은 내고 있지만 자칫 ‘하향 평준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주도 금융지주회사〓정부는 늦어도 다음달 중에는 공적자금을 투입, 한빛 평화 제주 광주은행을 금융지주회사로 묶을 전망이다.

정부가 구상중인 금융지주회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남 한국 중앙 한스 등 4개 부실 종합금융회사를 1개로 통합해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할 계획이다. 또 여기에 부실 생명보험사까지 끼어들게 된다.

은행 보험 종금 등 각 금융권별로 부실한 금융기관을 솎아내 거대한 금융지주회사의 우산아래 둔다는 게 정부의 구상. 여기에 투입될 공적자금만 10조원에 육박한다. 정부는 부실금융기관을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금융지주회사를 꼽고 있다.

▽문제점 투성이 금융지주회사〓전문가들은 정부주도 금융지주회사가 단순히 금융기관 부실을 쓸어담는 집합체로 전락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특히 2차 기업구조조정을 앞두고 은행권이 기업퇴출에 몸을 사리고 있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기회에 잠재부실을 금융지주회사로 그대로 안고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신한경제연구소 이백규 책임연구원은 “잠재부실을 털어내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면 부실처리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현경일 수석연구원도 “금융기관이 거대해질수록 위험관리가 어려워지며 시장에 미칠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충분한 토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공약(空約)이 된 우량은행 조기 합병〓이근영(李瑾榮)금융감독위원장은 취임후 “9월 중 우량은행 합병이 가시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9월이 되자 “10월 중 가시화”로 한 걸음 물러섰다. 시기만 바뀌었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산규모 세계 50위권의 초대형 은행이 필요하다는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장담했던 10월은 아무 일없이 지나가고 있다.

일선 은행들은 정부의 이같은 태도에 코웃음을 치고 있는 형편. 한 시중은행장은 “세계 50위권 은행이면 저절로 경쟁력이 확보되느냐”고 반문하며 “정부가 ‘한 건 주의’에 쫓겨 무리수를 두고 있는 듯하다”고 평했다.

독일에서는 3월 도이체방크와 드레스너방크가 합병계획을 발표했다가 한 달만에 무산됐고, 일본에서도 아사히 산와 도카이은행이 지주회사를 통해 통합키로 했지만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결렬의 직접 원인은 통합방식에 대한 이견.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통합은행의 경영목표와 비즈니스모델 설정이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거대 주택 국민은행의 노골적인 ‘구애’를 받고 있는 신한 하나 한미은행측은 “직원 1인당 생산성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합병을 하려면 우선 군살부터 빼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경준·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