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日 "회사 망하면 업주도…"

  • 입력 2000년 8월 2일 18시 40분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돌연변이’가 필요하다.

최근 일본 경제계의 최대 현안인 소고백화점의 부도처리 과정을 보면서 느끼는 역설적인 생각이다.

이번 사건의 ‘돌연변이’는 소고백화점의 전회장인 미즈시마 히로오(水島廣雄·88). 그는 40여년간 소고백화점을 경영하며 전권을 휘둘러 왔다. 그래서 ‘천황’ ‘하나님’ 등의 ‘자랑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한때 소고를 일본 백화점업계의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의 독단적 경영은 결국 부도라는 최악의 사태로 막을 내렸다.

미즈시마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일본의 다른 경영자와는 반대의 길을 택했다. 일본에서는 오너는 죽어도 회사는 사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미즈시마는 회사가 골병이 드는 동안에도 매월 수천만원의 월급을 가져가는 등 ‘내 몫 챙기기에 바빴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재를 출연하라고 해도 대답이 없다.

화가 난 주거래은행 닛폰코긴(日本興銀)은 1일 그의 부동산 주식 예금 등 개인재산을 동결하는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일부 예금은 차압했다. 일본에서는 이례적인 조치다. ‘돌연변이’ 미즈시마의 존재는 일본기업의 부도처리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준 셈이다. 반성하지 않는 경영진은 끝까지 책임을 추궁한다는 ‘새로운 룰’이 생긴 것이다. 일본 언론들도 미즈시마에 대한 인신공격은 하지 않지만 사실관계를 적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그의 처신을 비판하고 있다.

미즈시마는 한국적 풍토에서 보면 ‘돌연변이’가 아니라 ‘보통 기업주’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현실은 ‘회사는 죽어도 오너는 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재를 쏟아 부어가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경영자, 떠날 때 눈물을 흘리며 직원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오너. 한국에서 스스로 그런 ‘돌연변이’가 되는 기업주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까.

ksshim@donga.com

<심규선기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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