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신용불량 무서워"…금융권 '불량자 지정제' 활용

  • 입력 2000년 8월 1일 18시 39분


국세청이 세무 직원을 한 명도 현장에 내보내지 않고 29일 동안 2590억원의 체납 세금을 거두었다.

비결은 금융기관의 신용불량자 지정 시스템을 활용한 데 있다.

국세청은 지난달 1일 국세 체납자 6만3620명과 결손자 28만3694명의 명단을 전국은행연합회에 제공했다고 1일 밝혔다. 이번에 명단이 통보된 사람은 1000만원 이상의 국세를 1년 이상 내지 않은 사람과 1년 동안 3차례 이상 세금을 체납한 사람. 또 본인 명의의 재산이 없어 세금을 받아낼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결손처리(500만원 이상)한 사람 등이다. 은행연합회에 제공된 자료는 신용정보공동전산망에 주의거래처로 등록되고 통장개설을 비롯한 각종 금융거래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번 조치는 국세징수법 제7조와 신용정보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14조에 따른 것이다. 3년 전에 제정됐지만 단 한 번도 시행에 옮겨지지 않았던 규정이다.

국세청은 해당자의 명단을 은행연합회에 넘기면서 이 사실을 본인에게도 통보했다. 이 통보가 나간 후부터 체납 세금이 속속 납부되고있다. 세무 직원이 아무리 쫓아다녀도 꿈쩍도 않던 체납자 2만3426명이 29일 동안에만 2590억원의 체납 세금을 납부했다. 압류할 재산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결손’처리 되었던 사람들 중에도 5897명이 명단 통보직후 곧 바로 세금을 냈다. 정상곤 징세과장은 “통보 후 한 달 동안 약 2600억원 의 체납 세금이 걷힌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체납자 1인당 평균 징수금액은 835만원. 특히 1년 이상 세금을 내지 않은 ‘고질적인’체납자 1만1051명이 1200억원의 세금을 납부, 전체 징수 금액의 46.3%를 차지했다. 세목별로는 부가가치세(1542억원) 종합소득세(335억원) 양도소득세(286억원)순이었다.

국세청은 “올 하반기에도 두 차례 체납 자료를 금융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라며 “체납 세금을 낼 경우 실시간으로 불량신용정보 기록이 삭제될 수 있도록 은행연합회와의 전산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통보 제도는 가뜩이나 어려운 사람들로 하여금 금융이용의 기회마저 박탈해 파산을 부채질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한다. 한 전문가는 “국세청이 징세의 편의만을 생각해 신용 불량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명단 통보는 악성 체납자에게만 국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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