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박용성/꿩 대신 '젊은 닭' 키우자

  • 입력 2000년 7월 7일 18시 51분


‘꿩 대신 닭’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꿩이 없어서 대신 쓴 닭이 꿩보다 더 나은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NBC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명성을 날린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도 처음부터 꿩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해외 순회 연주회에서 예정된 지휘자가 병이 나는 바람에 대리 지휘를 했는데 여기서 큰 성공을 거두어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마에스트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다녀갔던 전설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역시 뉴욕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데뷔를 대타 지휘로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 바쁜 사람이 많습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조찬 간담회에 초청된 어느 장관은 그 모임이 끝난 뒤 서너 군데에 이미 다른 약속을 해놓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바빠서야 언제 무엇을 깊이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까. 장관이라는 직책이 상당한 중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장관 수명이 평균 1년을 못간다는 것이 다른 이유가 아니고 장관의 육체적 피로 때문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룹의 사장들은 급할 때 자기 대신 일을 맡아 처리할 수 있는 ‘닭’들을 잘 키우는 것이 회사의 장래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요즈음 대기업 사장들 중에는 자기 혼자 모든 일을 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나홀로 업무 스타일은 무슨 일이 생겨 사장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가 돌아올 때까지 회사일이 모두 마비되어 버리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장수가 잠시 자리에 없다고 진격하던 부대가 손을 놓고 싸움을 중단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글을 보고 저를 아는 분들은 ‘사돈 남 말 한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도 모든 것을 혼자 다 결정하고 처리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이런 방식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될 수 있는 한 젊은 ‘닭’들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이끌어 가는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모든 정보와 경험을 임원이나 직원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하가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것이 무서워 권한이나 지식을 혼자 독점한다면 그 사람은 꿩의 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다른 큰 닭들에게 결국 자리를 빼앗길 것입니다. 오늘날 급변하는 디지털 경제현실을 보면 기업 오너가 어떻게 처신해 나가야 앞으로 기업의 생존이 가능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최고경영자가 부하들이 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그들이 꿩으로 자랄 때까지 돌봐주어야 할 책임도 함께 져야 합니다. 그러나 권한을 위임했다고 해서 선의의 감시 감독까지 게을리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최근 어느 그룹의 대표는 아랫사람에게 모든 일을 맡기기만 하고 뒤를 챙기지 않아 큰 낭패를 당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 하더라도 경영상의 모든 책임은 어디까지나 최고경영자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밑의 부하가 될성부른 나무라고 하더라도 기업의 발전을 위한 마지막 책무는 그 자리에 있는 회사 대표의 몫이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박용성<대한상의 회장·OB맥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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