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게이트’ 터지나]수수료 떼면 현금…‘상품권 = 도박칩’

입력 2006-08-21 03:00수정 2009-10-0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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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바꿔주세요” 사행성 성인오락실에서 경품으로 내건 상품권이 대규모로 유통되고 있다. 20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바다이야기’ 성인오락실 뒤편의 경품용 상품권 교환소에서 한 30대 남성이 게임을 해서 딴 상품권을 돈으로 바꾸고 있다. 박영대 기자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사행성 성인게임기 ‘바다이야기’ 게임장. 이곳에서 게임을 하던 한 30대 남성이 게임장 뒤편의 쪽문을 열고 계단 반 층을 올라가 1평 남짓의 어두컴컴한 상품권 환전소 앞에 섰다. 이 남성은 게임을 해 경품으로 받은 5000원권 옅은 노란색의 경품용 문화상품권 30장을 내밀었다.

“수수료 10% 떼니 13만5000원입니다.” 환전상이 상품권을 세어 본 뒤 돈을 내주었다.

돈을 받아든 이 남성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와 다시 게임기 앞에 앉았다.

영화관, 서점, 음반 판매점 등 문화산업에 쓰여야 할 상품권이 사실상 카지노의 ‘칩’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환전상은 “하루에 상품권 3000장(액면 기준 1500만 원)가량을 환전해 준다”고 말했다.

▽상품권 불법 환전=환전상들은 오락실을 찾은 고객이 경품으로 받은 상품권 환전을 요구할 때는 액면 5000원짜리인 문화상품권을 장당 4000∼4500원에 사들인다. 환전 수수료 명목으로 10∼20%의 수수료를 떼는 것.

환전상은 이렇게 오락실 고객에게 산 상품권을 발행업체에 반납하고 같은 양만큼 새 상품권을 받아 다시 오락실에 판매한다. 이때 환전상은 인쇄비 등의 명목으로 상품권 발행회사에 장당 50∼60원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상당수 상품권 환전상은 상품권 유통업도 겸한다. 이들은 상품권 발행업체에서 장당 5000원인 상품권을 4700∼4800원에 사 같은 가격에 게임업소에 판매한다. 게임업소는 이 상품권을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사행성 성인오락기 안에 경품으로 넣는다.

이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 상품권 환전상은 상품권 1장에 적게는 200원에서 많게는 800원을 벌어들이게 되는 셈이다.

바다이야기 게임장 주변의 환전상들은 “업소가 있는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게임기 100대 정도 갖고 있는 업소면 하루에 적어도 상품권 5000장(2500만 원) 정도는 환전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락실, 상품권 재사용에 위조까지=상품권 발행사에 주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환전된 상품권을 발행사에 반납하지 않고 다시 오락실로 넘겨 오락기에 투입하는 경우도 많다.

한 환전상은 “오락실 업주가 환전상을 함께 운영할 경우에는 상품권 발행사에 구권 상품권을 넘겨 폐기 처분하지 않고 다시 오락기에 넣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발행사에 주는 장당 50∼60원의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서다. 문화관광부가 정한 ‘경품 취급 기준 고시’에는 오락실 업주가 경품을 재매입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위조 상품권도 크게 늘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한해 413장에 불과했던 5000원권 위조 상품권이 올해 들어서는 6월 말까지만 4만9138장이 발견됐다. 상품권이 사행성 성인오락실에서 현금이나 마찬가지인 ‘칩’으로 쓰이면서 위조 상품권이 크게 늘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이 같은 현상을 반영하듯 사행성 성인오락실 주변 환전소 앞에는 대부분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다. 위조 상품권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경품으로 지급하는 상품권 구입비용을 줄이려는 오락실 업주들이 상품권을 위조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본다.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 과정에 금품로비 의혹도=상품권 발행업체 지정 과정에 금품로비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상품권 발행업자는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을 앞두고 한 브로커가 접근해 ‘2억 원을 주면 발행업체로 지정되도록 해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또 한 오락실 업주는 “상품권 발행업체 사장이 ‘업체 선정 과정에서 (심사위원 측에) 5억 원을 찔러줬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상품권 사업 ‘황금알 낳는 거위’ 급부상

‘바다이야기’ 등 성인오락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경품용 상품권 발행 사업에 다양한 업체들이 뛰어들었다.

‘인증제’에서 ‘지정제’로 전환되면서 지난해 8월 1일 7개 상품권이 처음 경품용으로 지정됐고 현재는 19개 업체가 경품용 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정보기술(IT) 기업, 의류 회사, 부동산 개발 회사, 철강 업체까지 상품권 발행에 뛰어들 정도로 상품권 사업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급부상했다.

전통적인 문화상품권으로 영화·공연 관람, 도서 구매 등에 주로 사용돼 온 한국문화진흥의 문화상품권, 한국도서보급㈜의 도서문화상품권, 한국교육문화진흥의 교육문화상품권, 티켓링크의 티켓링크문화상품권 등도 현재 경품용 상품권으로 지정돼 있다.

인터넷 쇼핑몰 운영업체인 인터파크(인터파크문화상품권), 다음커머스(다음문화상품권), CS클럽(CS클럽문화상품권)은 경품용 상품권 판매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부터 상품권 시장에 뛰어든 게임업체 ㈜안다미로는 극장, 테마파크 등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을 2005년 8월 첫 지정 때 경품용으로 인정받았다. 벤처기업인 해피머니아이엔씨(해피머니문화상품권)와 출판업체인 씨큐텍(스타문화상품권)의 상품권도 같은 때 경품용 지정을 받았다.

무역회사로 출발해 부동산 개발업체로 변신한 ㈜포리텍과 특수강 생산업체인 ㈜삼미도 각각 가족사랑문화상품권과 삼미문화상품권 등을 발행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경품용 상품권이란

상품권이란 발행인이 증표에 기재된 금액에 대한 대가를 미리 받고 일반 고객에게 파는 무기명 유가증권을 뜻한다. 발행 주체에 따라 △발행자가 직접 생산, 판매하는 물품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 발행형(백화점 상품권, 주유 상품권 등) △발행자와 물품 제공자가 일치하지 않으며 일정한 계약을 통해 가맹점에서 물품이나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3자 발행형(도서상품권, 문화상품권 등)으로 나뉜다.

경품용 상품권은 오락실에서 경품으로 지급하는 상품권으로 대부분 제3자 발행형 상품권이다. 각 상품권 발행사의 가맹점에서 영화 관람과 도서 구매 등의 문화활동에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한 19개 발행사 외에는 오락실에서 경품용 상품권을 유통할 수 없다.

문화부는 2002년 12월 31일 고시 제2002-18호를 통해 ‘도서상품권·문화상품권·국민관광상품권·관광진흥법에 의한 호텔업 시설의 당해 호텔시설 이용권’을 게임제공업소의 경품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사행성 높은 게임물의 심의통과로 게임장이 급증하고 상품권이 과다 발행되면서 불법 환전 등이 성행하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달 27일 고위당정회의를 열어 경품용 상품권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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