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김치 공장으로 변신한 佛 고성 ‘김치샤또’…유럽서 고급화 나선 K푸드[글로벌 현장을 가다/유근형]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10일 23시 09분


유럽의 프리미엄 ‘K 식재료’ 열풍
K푸드 열풍, 고급 재료로 이어져…프리미엄 비건 김치, 佛 지방까지 확산
파리에 한국 ‘장’ 전문점 성업…고급 전통주, 와인과 견줄 만큼 품질 인정
고추장, 김치 담는 옹기도 인기

《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부르고뉴 지역 드베이 시. 프랑스 와인의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아직 포도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아 인적은 뜸했다. 10여 분을 차로 달려도 차 한 대 만주치기 어려울 만큼 조용한 동네였다. 고즈넉한 도로를 한참 차로 달리다 보니 오래된 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귀족의 성을 연상케 했다. 성 내부에는 오래된 고가구와 장식품, 유화들로 가득했다. 약 200년 전 이 성을 지은 설립자의 초상화도 남아 있다.

6일(현지 시간) 프랑스 중부 드베이시에 위치한 김치샤또 전경. 한식 명장 유홍림 대표와 가족들이 200년 된 고성을 구매해 김치공장과 생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드베이=유근형 특파원
6일(현지 시간) 프랑스 중부 드베이시에 위치한 김치샤또 전경. 한식 명장 유홍림 대표와 가족들이 200년 된 고성을 구매해 김치공장과 생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드베이=유근형 특파원
놀랍게도 이 성의 주인은 한식 명장 유홍림 대표다. 그는 가족과 함께 이 성을 구입해 프리미엄 김치 공장 ‘김치샤또’로 변신시켰다. 서양식 외관과는 달리, 성 곳곳에는 한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적지 않았다. 외부 밭에는 갓, 고추, 마늘, 부추, 생강, 파 등 야채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담장 한쪽에 마련된 수십 개의 한국식 항아리에는 유 대표가 직접 담근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이 저장돼있다. 》

● 고성에서 만든 비건김치 유럽 전역에 판매

유 대표는 김치샤또의 텃밭과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비건 김치를 만들어 프랑스 전역뿐 아니라 네덜란드 스페인 등 유럽에 판매하고 있다. 현재는 1주일에 약 100kg가 나간다. 조만간 유럽 유명 슈퍼마켓에도 정기적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유 대표는 “산지에서 대부분의 김치 재료를 공수하고, 젓갈 대신 장을 넣어 고급 비건 김치를 만들고 있다”며 “맛이 세지 않고 부드러워 유럽 사람들이 샐러드처럼 편하게 우리 김치를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치샤또 유홍림 대표가 직접 담근 장들을 선보이고 있다. 드베이=유근형 특파원
김치샤또 유홍림 대표가 직접 담근 장들을 선보이고 있다. 드베이=유근형 특파원
파리와 달리 프랑스 소도시에선 김치를 접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드베이시에 자리 잡은 김치샤또 덕에 김치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이곳 주민들 중 ‘김치 마니아’도 많다. 김치샤또 인근에 사는 제닌 씨는 “한국에 가서 김치를 먹어봤고 직접 만들기도 하는데, 이곳 비건 김치는 정말 다르다. 이제는 한국 슈퍼에서 파는 일반 김치를 사 먹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 씨도 “지역에서 나는 천연 재료를 가지고 친환경적으로 김치를 만들기 때문에 프랑스 요리에는 없는 풍미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치샤또는 김치 공장을 넘어 지역사회의 한국 문화센터 역할도 하고 있다. 성 바로 옆 다른 건물에는 한국 전통 고가구로 장식된 공간이 마련돼있다. 지역사화 주민들이 언제든지 방문해 한국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꾸며졌다. 6월에는 지역 주민 수백 명을 초대해 단오제 축제를 열어 한국 문화를 함께 나눌 계획도 하고 있다. 레벨 드베이시장은 “김치샤또는 지역사회의 여러 행사에 헌신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덕분에 드베이시를 넘어 다른 지역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 佛 미식의 중심에 위치한 한국 전통장 전문점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동안 아시아 음식의 한 종류 정도로만 여겨지던 한식이 최근 프랑스에선 미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에 한식당을 찾고, 한국 마트에서 라면 김치 등 일반 제품을 사는 것을 넘어 프리미엄 한식 식재료를 구하고, 직접 요리해보려는 수요도 많아지고 있다. 전민형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파리지사장은 “세계 미식 트렌드를 선도하는 프랑스 시장은 한국 고급 식재료가 세계로 더 나아갈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문을 연 프리미엄 장 전문점 발효에서 파리지앵들이 한국 전통 장을 맛보고 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문을 연 프리미엄 장 전문점 발효에서 파리지앵들이 한국 전통 장을 맛보고 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요즘 한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전통 방식으로 담근 ‘종갓집 장’을 구매하려는 파리지앵들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파리 대표 고급 문화·상업지구인 6구에는 한국 프리미엄 장 전문점 ‘발효(Balhyo)’가 문을 열고 성업 중이다. 세계 최초 백화점으로 알려진 르봉막쉐(Le Bon Marché)가 위치해 전 세계 미식가들로 붐비는 파리 중심에서 한국에서도 드문 장 전문점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보성 선씨 24대손인 선윤아 대표는 한국의 장을 미식과 소스의 본고장인 프랑스에 알리겠다는 일념으로 프리미엄 장 시장에 뛰어들었다. 선 대표는 “프랑스는 와인과 치즈의 나라라 발효 음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우리의 장을 알리기 좋은 환경”이라며 “프랑스 고객들로부터 ‘한국에서 먹었던 장보다 맛이 깊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발효는 보성 선씨 종가에서 만든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을 직접 프랑스로 공수해 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장을 재해석한 샐러드 드레싱, 소스 등도 인기를 얻고 있다. 점심시간에는 소스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간단한 런치 박스를 만들어 브런치 족들을 공략하고 있다. 파리 시민 피에르 씨는 “한국 음식을 좋아해 한식당에서 떡볶이와 비빔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이곳의 발효된 소스는 한국적인 맛과 유럽풍 소스의 맛을 모두 느낄 수 있어 조금 달랐다”며 “장을 재해석한 이 소스의 재료가 무엇인지 탐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 한 복판에 문을 연 프리미엄 장 전문점 발효 전경. 장을 소재로 한 음식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발표 제공
지난해 프랑스 파리 한 복판에 문을 연 프리미엄 장 전문점 발효 전경. 장을 소재로 한 음식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발표 제공
선 대표는 미국 우버에 인수된 스타트업 ‘스팟히어로(SpotHero)’의 창업 멤버로 일하는 등 정보통신(IT) 업계에서 13년 동안 일했던 경험을 살려 사업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 이곳의 장류는 일반 슈퍼에서 파는 장보다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재구매율이 35%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좋다. 지난해 6월 개업 당시보다 손님이 2배 가량 늘어 하루 100여 명이 다녀가고 있다. 평일 점심시간에는 장을 사려는 프랑스인들이 10m 이상 줄을 서기도 한다고 했다.

● 소주 넘어 한국 전통주 찾는 파리지앵들

고급 한국 전통주를 찾는 프랑스인들도 늘고 있다. 특히 쌀과 누룩, 물만을 사용해 빚은 전통주들이 프랑스 고급 음식과의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최영선 술주컴퍼니 대표는 “탁주는 호불호가 있고, 증류소주는 식사에 곁들이기 쉽지 않지만 청주는 와인과 견줄 정도로 경쟁력이 탄탄하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국의 좋은 술이 곧 유럽 문턱을 넘어설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와인박람회에서 최영선 술주컴퍼니 대표가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전통주 시음회를 진행하고 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와인박람회에서 최영선 술주컴퍼니 대표가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전통주 시음회를 진행하고 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실제로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와인 박람회의 한국 술 마스터 클래스에는 약 50명의 현지인이 몰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전통주 우렁이쌀, 삼양춘, 풍정사계, 담 라이트, 세종대왕어주, 도한 청명주, 서울 실버 등에 대한 시음회가 진행됐다. 또 일본 사케와 다른 풍미와 산미를 발견했다는 참가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평소 소주를 즐겨마신다는 파리 직장인 아르망 씨는 “처음 한국의 술이라고 설명을 안 해줬다면 그냥 약간 단 와인이라고 여길 정도로 향과 맛이 좋았다”고 말했다.

일반 마트에서 보기 힘든 한국의 프리미엄 식재료 산지를 직접 발굴해 프랑스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유통 플랫폼도 생겨나고 있다. 파리 13구에서 고급 한식 재료를 공급하고 있는 ‘미식가’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선 기순도 명인의 고추장, 유럽 식료품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참기름 등 고급 식재료를 전문 판매하고 있다. 품질을 인정받아 파리 대표 백화점인 르봉막쉐에도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미식가는 프랑스마스터셰프연합(MCF) 소속 최고 수준 셰프 200여 명과 함께 15일부터 한국을 방문해 좋은 식재료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다.

프랑스 파리 13구에 위치한 프리미엄 K식자재점 미식가에서 장인이 만든 항아리가 판매되고 있다. 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는 파리지앵들이 늘면서 항아리도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프랑스 파리 13구에 위치한 프리미엄 K식자재점 미식가에서 장인이 만든 항아리가 판매되고 있다. 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는 파리지앵들이 늘면서 항아리도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파리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에탕프에 사는 줄리 씨는 “한 달에 한 번씩 고추장, 고춧가루, 참기름을 사러 이 곳에 온다. 떡볶이 미역국 등을 만들어 먹어보면 재료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식가는 고급 재료로 만든 김치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면서 김치를 만드는 법을 공유하는 쿠킹 클래스도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김치 담그기 행사를 마치면 참가자들은 장인이 만든 옹기에 직접 김치를 담아 가져간다. 이정근 미식가 대표는 “대중적인 라면 ,과자 등도 한식을 알리는데 중요하지만 발효 식품 등 한국의 고급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며 “이를 한식의 경쟁력과 위상을 올리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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