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윤의권/솔직히 털어놔야 경제도 산다

  • 입력 2000년 6월 30일 19시 28분


최근 증권가에서는 ‘묻지마 투자’란 말이 유행이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아노미 현상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아노미 현상이란 프랑스에서 나온 말로 사회질서가 흐트러져서 개인의 행동이 통제를 잃게 되어 범죄나 비행 등 정상을 벗어난 행동을 보이기 쉬운 상태를 말한다. 실제로 최근 일어난 급박한 사건들은 이러한 아노미 현상의 초기 증세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아노미 현상은 신용공황의 초기원인으로 나타난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노미 현상이 가져온 신용공황의 위력은 국가경제를 좌우하는 근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최근 2차 금융구조조정 및 기업들의 자금 경색으로 인해 국내 경제가 매우 불안하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또 수입이 급증하고 기름값이 올라가면서 일반인의 시각 또한 ‘제2의 IMF 외환위기 사태’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3년 전 한보와 기아 사태를 겪으면서 생긴 일종의 불신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최근 기업들의 자금경색이나 2차 금융구조조정의 문제는 그때와 사뭇 다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주도해 나가고 있고 외환 보유고도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축적된 상태다.

즉 신용사회와 경제질서가 파괴되는 신용공황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이런 시각은 외국의 유수 신용평가기관도 마찬가지다. 지난 2년간 무역수지 흑자를 낸 국내경제에 대해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불안감과는 상반되는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최근에는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로 오히려 하반기에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외국 증권사들의 견해가 있을 정도다.

결국 최근 기업들의 자금 경색으로 인한 신용공황은 일반인의 의식 속에 숨겨진 믿음에 대한 불신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를 두고 비단 일반인의 잘못된 시각으로 치부해 버려선 안된다. 이런 현상의 근본원인은 믿을 수 없는 재무제표와 방만한 경영의 결과라는 것을 기업들은 알아야 한다.

신용사회의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투명한 경영을 모토로 하는 기업’, ‘기업의 능력과 잠재력을 믿는 투자자’, ‘기업과 투자자에게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지원과 감독을 하는 정부’. 이 3박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간다면 분명 신용사회의 길로 가는 해답의 열쇠가 된다.

미국에서는 조지 메이슨대의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신뢰의 경제학’을 주창해 인기를 끌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느냐 망하느냐는 신뢰가 좌우한다는 내용이다. 후쿠야마교수는 옛 소련의 패망을 전형적인 예로 든다. 서로 믿지 못하다 보니 거래가 마비됐다.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것은 비효율의 극치였다. 빵이 언제 없어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다른 일을 팽개치더라도 줄을 서야했던 것이다.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도 신뢰의 회복에 있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윤의권(서울신용평가정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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