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옛그림읽기]김정희 '세한도'

  • 입력 2000년 5월 23일 18시 59분


시절이 하 수상타. 세상이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느라 분분하니 흙먼지가 인다. 어제의 벗이 손바닥 뒤집듯 오늘의 원수가 되고, 그렇다고 진정 미운 사람도 없어서 누구하고나 쉽게 손을 잡고 웃음을 판다. 어느 세상엔들 이런 한심한 꼴이 없었으랴만, 돌이켜보면 세상이 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150년전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귀양을 살았다. 일찍이 명문가 자손으로 참판(차관)까지 지냈지만 그보다는 학문과 예술로 한 나라를 대표하고 나아가 중국에서도 크게 이름을 떨쳤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 날개 떨어진 그를 누가 돌아나 보랴! 사귀어 득 되기는커녕 권문세가의 미움을 살뿐이다. 그러나 제자 이상적(李尙迪)은 한결같았다. 멀리 베이징(北京)에서 사들인 귀한 책들을 해마다 잊지 않고 꼬박꼬박 천리 바다 건너 스승께 보냈다. 추운 시절을 그린 그림 ‘세한도(歲寒圖)’는 제자의 고마운 마음에 감격해 뼛 속 깊이 새겨진 뜻을 그려낸 작품이다. 추사는 썼다. “옛 글에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사람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 잣나무처럼 변함이 없는가?’”

‘세한도’ 쓸쓸한 화면에는 여백이 많아 겨울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데, 보이는 것은 집 한 채와 나무 네 그루뿐이다. 까슬까슬한 마른 붓으로 쓸 듯이 그려낸 마당의 흙 모양새는 채 녹지 않은 흰 눈인 양 서글퍼 보인다. 그러나 ‘세한도’엔 역경을 이겨내는 선비의 올곧고 꿋꿋한 의지가 있다. 집을 그린, 반듯하게 이끌어간 묵선(墨線)은 조금도 허둥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차분하고 단정하다. 초라함이 어디 있는가? 자기 연민이 어디에 있는가? 보이지 않는 집주인 김정희, 그 사람을 상징하는 작은 집은 외양은 조촐할지언정 속내는 이처럼 도도하다.

추사는 이 집에서 남이 미워하건 배척하건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지켜 나아갈 길을 묵묵히 걸었다. 고금천지에 유례가 없는 강철같은 추사체의 산실이 바로 여기다. 그러나 이것은 집이 아니라 추사 자신이었다. 그래서 창이 보이는 전면은 반듯하고, 역원근(逆遠近)으로 넓어지는 벽은 듬직하며, 가파른 지붕 선은 기개를 잃지 않았다. 우뚝 선 아름드리 늙은 소나무를 보라! 뿌리는 대지에 굳게 박혔고, 한 줄기는 하늘로 솟았는데 또 한 줄기가 길게 가로 뻗어 차양처럼 집을 감싸안았다. 그 옆에 곧고 젊은 나무가 있다. 이것이 없었다면 집은 그대로 무너졌으리라. 변함없이 푸른 소나무, 제자 이상적이다.

‘세한도’엔 추운 시절에 더욱 따스하게 느껴지는 옛 정이 있다. 그래서 문인화의 정수라 일컬어진다.

오주석(중앙대 겸임교수)josoh@unitel.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