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얼간이'와 총리

  • 입력 2000년 5월 19일 19시 48분


신라시대 거문고의 달인이었다는 백결선생은 ‘옷을 백번 기웠다(百結)’는 이름뜻 그대로 언제나 다닥다닥 기운 옷을 입었다고 한다. 조선조 초기의 명재상 황희(黃喜)는 벼슬에서 물러난 뒤 그의 아들이 정승에 올라 선물을 가져오자 “네놈이 벌써 재물을 아느냐”고 호통치며 임금께 자식의 파직을 상소했다고 한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가 마흔아홉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집에는 곡식 한 말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백성을 다스리는 수령이라면 모름지기 청심(淸心)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렇듯 가난을 편하게 여기고 그것을 실천하는 옛 인물들의 삶을 오늘의 시각에서 본다면 마냥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을 터이다. 하나 옛선비의 안빈낙도(安貧樂道)란 바로 공직자의 곧은 처신이자 자기 절제의 다른 표현이니 그 정신이야말로 절실하다. 아무리 부패가 일상화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한 나라의 총리라는 인물이 세금을 줄여보겠다고 자기 재산을 남의 이름으로 돌려놓았는데 그 재산도 뇌물로 마련한 것이라고 하니, 이런 얘기를 옛 선비가 들으면 무엇이라 호통칠 것인지….

▷나라안 소식이 씁쓸한데 비해 나라밖 소식은 흥미롭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후보로 나설 앨 고어부통령에 대해 한 경제전문잡지가 “금융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고어는 얼간이”라고 빈정댔다는데 그 이유인 즉 앨 고어부통령이 그동안 주식투자를 안했기 때문이란다. 앨 고어는 “공인으로서 주식투자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피해왔다”고 항변하지만 비난자들은 주식도 모르면서 국가경제를 어떻게 이끌겠느냐고 쏘아댄다.

▷하기야 요즘 우리 주위에서도 주식을 모르면 ‘얼간이’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판이니 자본주의 선진국 미국에서 장차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물이 주식을 모른다면 탓할 만도 하겠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들일수록 주식투자로 떼돈을 벌고 이른바 지도급인사라는 인물일수록 이재에 밝은 우리 사회에서 앨 고어 같은 공직자 자세에 감히 누가 ‘얼간이’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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