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Digital]"사이버 검사로 불러주세요"

  • 입력 2000년 4월 5일 19시 54분


68년에 세워진 시골 검찰청인 홍성지청. 그러나 이곳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지청장 등 일곱 검사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최신형 펜티엄 컴퓨터와 화상카메라가 바로 그것. 두 물건은 청내의 유일한 첨단 기기지만 여기 검찰 최초로 설치된 ‘화상회의시스템’은 검사들의 업무와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있다.

4월1일 토요일 오전. 수사 기록을 검토하던 전석수(全錫洙)검사의 컴퓨터에 신호음이 울리면서 모니터에 서주홍(徐州洪)청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전검사는 헤드폰을 썼다.

“전검사, 3월에 미제(未濟·해결 못한 사건) 얼마나 되나?”

“예, 한 건 남았습니다.

“열심히 했구먼. 이 달엔 한 건도 없게 하라고.”

이참에 전검사는 “청장님 내일부터…”라며 휴가 인사까지 얼렁뚱땅 해치워 버렸다.

2월말 시스템을 설치한 뒤 검사들은 급한 보고나 지시, 간단한 결재 등은 직접 상대를 만나지 않고 ‘화상회의’를 통해 한다.

우선 업무 효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전처럼 주요 피의자를 수사하다 상사에게 불려가 수사흐름이 끊기거나 부속실에서 긴 시간을 낭비하며 기다리는 일이 없어졌다.

수사를 하다가 잘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앉은 자리에서 동료 검사를 ‘호출’해 얼굴을 마주보며 의논도 할 수 있다.

업무뿐이 아니다. 가족이 서울에 있는 오세경(吳世俓)부장은 퇴근 무렵이면 서울의 아이들을 화상으로 호출, 사랑을 확인한다.

원격지(遠隔地)부임의 ‘아픔’을 해결하는 비법으로 검찰내에 소문이 나 이를 전해들은 신승남(愼承男)대검 차장도 근무시간이 끝나면 영국 유학간 아들과 화상대화를 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설치한 구태언(具泰彦)검사는 “이를 전국에 확대하면 수사인력과 시간의 낭비를 대폭 줄일 수 있고 민원인 편의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검사는 피의자를 옆에 앉히고 대구지검에 출두한 증인과 대질을 할 수 있다. 또 광주교도소의 피의자를 서울로 호송하는 시간낭비와 ‘위험’도 없어진다.

검찰은 오는 6월 전국 검찰청이 근거리통신망(LAN)으로 연결되면 ‘화상회의시스템’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변화를 모르던 검찰 조직에도 이처럼 정보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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