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몸이야기]세포/인간의 진화 비밀 간직

  • 입력 2000년 3월 2일 20시 14분


‘인자인야 인자인야 인인지시일단물(人者仁也 仁者人也 人仁只是一團物)’

매월당 김시습은 사람이라는 존재와 어질다는 품성은 한 덩어리이며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다.

학창시절 생물시간, 세포핵에 있다고 배운 ‘인’의 한자는 뜻밖에 ‘어질 인(仁)’. 이것이 없어도 사람이란 존재는 없다. 지난달 29일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이 “두달안에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됐음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던 바로 그 유전자가 단백질(protein·그리스어로 ‘가장 중요한 것’이란 뜻)을 만들 때, 인이 필수작용을 하기 때문. 인은 단백질 제조장소인 ‘리보솜’을 조립한다.

세포 안에는 ‘어진 것’도 있지만 이기적인 것도 있다. 바로 유전자다. 왜 그럴까?

▼이기적 유전자▼

사람은 세포마다 23쌍의 똑같은 염색체가 있고 이들 염색체는 30억개의 염기쌍이 이중나선형으로 꼬여 있다. 염색체에선 모든 DNA가 단백질을 만들진 않는다. 90%의 DNA는 ‘그냥’ 있을 따름.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영국 옥스퍼드대 리처드 도킨스박사에 따르면 유전자가 자기복제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 ‘땅투기’를 한 것. 유전자가 자신 만을 위해 ‘좁은 땅덩이’에 필요없는 공간을 만들기 때문에 이기적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남성 염색체인 Y염색체는 오직 한가지, 남자를 만드는 일만 하는데도 수 백만 쌍의 DNA가 의미없이 반복돼 있다. 유전자를 보면 여성보다 남성이 이기적인게 드러나는 것.

일부 과학자들은 ‘놀고 먹는’ 염기쌍에 대해 진화 과정에서 세포에 침투한 박테리아의 흔적이라고 설명. 이들 박테리아도 숙주인 사람의 영토를 빼앗아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세포의 일생▼

어른의 몸엔 60조∼70조 개의 세포가 있다. 이는 세계 인구의 1000배.

우리 몸의 세포는 80일 마다 세포의 반이 죽고 그 만큼 새로 생긴다. 세포는 심한 자극을 받으면 ‘사고사’하며 ‘아폽토시스’라는 장치가 품질 미달의 세포나 불필요한 세포를 가차없이 처분하기도 한다.

세포는 일시적으로 혈액 공급이 끊겼을 때 ‘지옥 문턱’에 선다. 뇌신경은 3∼5분, 심장근(筋)세포와 간(肝)세포는 1시간 내 피가 다시 들어오면 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세포는 또 오랫동안 깁스를 하고 있거나 영양실조 때 쪼그라들었다가 몸이 회복되면 다시 커진다. 세포들은 저축도 한다. 지방세포는 지방을 저장하고 간세포는 글리코겐을 저장했다 필요할 때 내보내는 것.

한편 지방세포의 경우 어른들은 살이 쪄도 세포 크기만 커지지만 성장기 애들은 수도 증가한다. 일단 생긴 세포는 살이 빠져도 없어지지 않아 아이들의 비만이 어른보다 해롭다. 또 아잇적에 뚱뚱하면 커서 날씬해졌다가도 다시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세포속 '이방인'▼

세포의 세포막 안에는 핵 소포체 리보솜 골지체 리소좀 미토콘드리아 등이 들어있다. 이 중 미토콘드리아는 생체에 필요한 에너지(ATP)를 만드는데 세포핵 안의 DNA와 달리 고유한 DNA를 갖는다. 또 박테리아를 죽이는 항균제에 쉽게 죽는다. 과학자들은 “20억년 전 침투한 세균이 인간의 세포소기관으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토콘드리아의 염색체는 어머니에게만 물려받는 것도 특징. 1980년대 과학자들이 세계 여성 135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 역추적한 결과 현인류의 공통적 어머니는 15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학자들은 이 가상의 여인에 ‘미토콘드리아 이브’란 이름을 붙였다.

한편 노화 이론에서도 미토콘드리아가 등장한다. 우리 몸에서 쓰다남은 산소인 활성산소 때문에 파괴된 미토콘드리아가 쌓여 세포가 죽는 것이 노화라는 이론은 여러 노화이론 중 최중심에 있다. 서울대 내과 이홍규교수는 1997년 미토콘드리아의 감소가 당뇨병 등 성인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달리기 조깅 등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하고 비타민이 듬뿍 든 채소와 과일을 먹어 활성산소를 줄이는 것이 성인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늦추는데 도움이 된다.

◇'생명의 사슬'DNA◇

1988년초 미국 로렌스리버모어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주사전자현미경’을 이용, 세계 처음으로 DNA를 정확히 볼 수 있었다.

35년전 왓슨과 크릭이 미국의 학술지 ‘네이처’지에 낸 논문의 내용과 똑같이 이중나선형 꼴이었다.

사람의 세포 하나에 있는 염색체 23쌍의 DNA를 모두 꺼내서 이중나선형 구조를 풀어 연결하면 약 183㎝ 정도.

염색체에선 3개의 염기가 하나의 아미노산을 만들어 내며 몇 개의 아미노산이 모여서 단백질이 된다.

이때 DNA가 직접 아미노산을 만들지는 않으며 전령RNA가 DNA의 암호를 읽는 ‘전사’과정을 거쳐 리보솜에 가서 전달RNA를 통해 특정 아미노산을 만드는데 이는 ‘번역’이라고 한다.

유전자는 하나의 단백질을 만드는 염기를 합친 것.

◇암세포◇

1989년 노벨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프랑스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마이클 비숍 박사 등 2명이 유전자 고장이 암을 일으킨다는 것을 밝힌 공로로 상을 받았는데 공동연구자로서 결정적 역할을 한 프랑스 의학자가 수상자에서 제외됐기 때문.

이처럼 암이 유전자 고장 때문이라는 것은 20세기 중반에서야 밝혀졌다.

암세포는 완전히 성장하기도 전에 분열하며 끝없이 증식하는 세포. 정상 세포는 제 둘레에 분열된 다른 세포가 둘러싸면 ‘부끄러운지’ 세포분열을 중지하지만 암세포는 그래도 ‘무식하게’ 계속 분열한다.

보통세포는 제자리를 지키지만 암세포는 혈액 림프관을 타고 아무데나 가는데 이를 ‘전이’라고 하며 가까운 다른 조직으로 파고드는 것은 ‘침투’라고 한다.

다음은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고장의 종류.

▽DNA의 돌연변이〓 유전자가 이미 쌓인 여러가지 이유로 세포 분열 및 DNA복제 때 고장나고 불량단백질이 만들어져 정상세포를 죽이고 암세포가 활동하도록 한다.

▽RNA의 변이〓DNA 변이설은 신경 근육세포 등 분열하지 않는 세포에서 암이 생기는 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지난해 조선대 유호진교수는 미국 에모리대와 공동으로 DNA에 고장이 났을 경우 RNA폴리머라제가 아무 생각 없이 불량RNA를 만들고 이것이 불량단백질을 만들어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내 미국의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

▽바이러스도 원인〓바이러스가 세포를 뚫고 들어가 DNA 일부를 자르고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레트로바이러스’이며 바이러스가 DNA를 변화시키는 것을 ‘역전사’라고 한다. 에이즈도 ‘HIV’라는 레트로바이러스 때문에 일어난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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