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교통선진국]국내 어린이안전교육 실태

  • 입력 2000년 2월 28일 22시 24분


“뛰뛰빵빵, 뛰뛰빵빵∼.”

15일 오후 서울 도봉구 쌍문 4동 선희유치원 수업시간. 7세반 원생 23명이 우르르 운동장에 마련된 교통안전놀이터로 몰려나갔다. 아이들 손에는 자동차 등 소품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오전 수업시간 내내 종이상자를 자르고 붙이고 색칠해서 만든 것이다. 교통순경도 보이고 의사와 간호사도 눈에 띄었다.

유치원 교사의 신호가 떨어지자 아이들은 각자의 ‘역할’대로 바쁘게 움직였다. 버스 승용차 트럭 등이 지나갔고 도로 한가운데 자리잡은 교통순경의 수신호도 제법 폼이 났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자 차들은 멈춰 섰고 10여명의 아이들이 손을 높이 든 채 길을 건넜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자 다시 차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꽝!”

자동차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과속하던 승화의 차가 중앙선을 침범해 우성이의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삐오, 삐오∼.” 구급차 역할을 맡은 윤철이가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의사 규서와 간호사 세욱이가 응급처처를 했다. 교통순경인 경진이는 사고현장을 조사했다. 몇 분 뒤 교통안전놀이터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각자 소감을 얘기했다.

“우성이가 부딪쳐 넘어지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정말 사고가 났다면 마음이 아팠을거예요.”(경신)

“날씨가 추웠지만 즐거웠어요. 도로에는 승화의 차처럼 과속하는 차들이 너무 많아 무서워요.”(윤철)

유선희원장(55)은 “어린이는 신체발달이 미숙해 교통사고 등 우발적인 사고에 항상 노출돼 있다”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방교육을 통해 사고를 막아야 할 것”이라고 ‘교통놀이’의 취지를 설명했다.

축소판 운전면허시험장까지 갖춘 이 유치원은 1학기 10시간, 2학기 20시간을 교통안전교육에 집중한다. 복도에 좌측통행선을 만들어 길을 걸을 때의 안전습관도 길러준다. 5, 9월엔 인근의 어린이교통공원에 견학을 가기도 한다. 보행자 자전거 자동차 등 3가지 운전면허를 따야 졸업을 시킨다. 또 교사교육용으로 만든 교통안전비디오를 학부모에게 빌려주기도 한다.

어린이 교통사고는 96년 일시적으로 늘었지만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경찰청이 발표한 ‘99년 어린이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13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는 2만6974건이 발생, 2만9749명이 다치고 490명이 숨졌다. 사고를 당한 어린이 중 절반 이상(54.5%)이 취학 전 어린이들이다.

우리나라의 어린이 교통사고는 그러나 독일 일본 등 교통선진국에 비하면 훨씬 높은 수준이다. 한마디로 유치원 때부터 제대로 교통교육을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연간 21∼23시간의 짧은 교육시간도 문제지만 제대로 된 교재 하나 없는 실정이다. 교통안전 담당교사가 학교당 1명씩 있지만 기본적인 업무를 보면서 과외 일로 맡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교육이 안되는 편이다. 경찰청과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개발해 올해부터 초등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교육에 들어가기로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과학연구원 김경옥수석연구원(41)은 “교통 전담 교사를 별도로 두기 힘든다면 일본처럼 학교별로 학부모 교통안전 명예교사를 보다 많이 양성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만 하다”고 말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전문가 기고▼

등학교 1학년 입학식이 얼마 안 남았다.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입학이라니….’ 아이가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기분도 잠깐. 마음 한 구석엔 ‘혹시 등하교길에 교통사고라도 당하면…’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98년 3월 한 시민단체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10명 중 9명이 자녀의 교통사고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 중 70.4%가 ‘가끔 무단횡단을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지만 어른을 따라하는 모방능력은 탁월하다는 점에서 부모의 무분별한 행동이 자녀의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실제 어린이 교통사고 중 무단횡단으로 인한 사고가 50%를 넘는다.

부모들은 흔히 어린이에 대한 교통안전교육을 유치원이나 학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걷기 시작할 때부터 부모로부터 먼저 ‘교육’을 받는다. 선진국 부모들은 자녀가 걷기 시작하면 ‘우선 멈추는 습관’ ‘운전자와 눈맞추는 습관’ ‘차를 계속 보면서 건너는 습관’을 길러준다.

자녀에게 교통안전교육을 시키고 싶어도 정보가 없어 고민하는 부모라면 인터넷 어린이교통안전학교(www.go119.com)를 활용해 볼 것을 추천한다. ‘자주 발생하는 교통사고 유형과 예방법’ ‘어린이 교통안전백과’ 등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교통안전 가족회의’도 참고할 만하다. 일요일 아침 식사 후 온 가족이 모여 자주 발생하는 어린이 교통사고 사례를 놓고 사고 원인과 예방법을 토론하는 것이다.

허억(어린이교통안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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