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꼬마은행' 평화銀의 생존 실험

  • 입력 2000년 2월 9일 20시 06분


근로자전문 금융기관으로 출발한 평화은행은 은행권의 ‘꼬마’이자 ‘막내’다. 전국의 지점수는 87개로 대형은행의 20%에도 못미치는 수준. 92년에 태어났으니까 시중 지방은행을 통틀어 연륜도 가장 짧다.

외형만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이 꼬마은행의 행보가 최근 들어 금융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금융 겸업화 및 대형화 추세에 맞춰 가장 공격적으로 정보통신 유통 보험 증권 등 타업종과의 손잡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

‘전략적 제휴’라는 용어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던 98년부터 일찌감치 공을 들인 덕택에 9일 현재 평화은행이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한 기관은 90곳으로 국내 은행 중 가장 많다.

은행 입장에서 영업망의 열세는 고객기반을 확충하고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치명적 약점. 이 은행 전자금융팀 양재춘차장은 “지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고객에게 양질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전략적 제휴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통상 시중은행이 한개의 점포를 운영하려면 매년 수십억원의 추가비용이 드는 실정. 제휴기관을 전자금융으로 묶는 작업이 진척되면서 평화은행은 불필요한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 은행이 이처럼 업무제휴에 열을 올리는 것은 98년 은행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미니은행’의 비애를 절감한 탓이 크다. 당시 자본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퇴출대상에 거론되는 아픔을 겪은 뒤 ‘몸집을 키우기가 어렵다면 다른 기관과 손을 잡아서라도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

한국노총에 이어 민주노총과 거래를 트는 등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면서 98년 ―1.79%였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작년말엔 7.16%로 높아졌다. 김경우행장은 “인터넷 시대에 지점망 확대에만 집착하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라며 “전자금융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워나가면 충분히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평화은행이 2차 금융구조조정이라는 격랑을 성공적으로 헤쳐나갈지 여부는 전적으로 시장에서 결정될 사항. 다만 이 은행이 벌이는 일련의 시도는 커다란 덩치를 주체하지 못해 고민인 기존 대형은행들에 ‘미래형 금융기관’이 가야할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유일하게 서울 강남의 테헤란밸리에 본점을 둔 ‘꼬마은행의 생존실험’은 지금도 금융계 한편에서 소리없이 계속되고 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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