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日 거대여당의 오만

  • 입력 2000년 2월 6일 19시 49분


일본 NHK방송은 국회 본회의나 예산위 등 국회의 중요한 움직임을 모두 생중계한다. 그 덕분에 요즘 일본인들은 거대여당끼리 모여 북 치고 장구치는 정치코미디를 보고 있다.

이런 파행은 자민 자유 공명당 등 연립 3여당이 중의원 비례대표 20명 삭감안을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강행처리한 데서 비롯됐다. 민주 공산 사민당 등 야3당은 지난달 28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의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모든 의안심의를 거부하고 있다. 총리가 야당 불참하에 시정연설을 한 것은 일본 헌정사상 처음이다.

여당은 야당의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3일부터는 예산안도 단독심의하고 있다. 시정연설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예산심의를 단독으로 하는 모습은 여간 민망하지 않다. 질의에 나선 여당 의원들의 질문이 수준 이하이기 때문이다.

“총리는 마음 씀씀이를 소중히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서민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고 있다.”

“총리의 이름이 ‘게이조(惠三·세가지 은혜)’이므로 풍족한 마음, 여유있는 교육, 풍부로운 환경 등 ‘세가지 은혜’를 어린이들에게 선물해 주기 바란다.”

여당의원들은 질의가 아니라 총리 칭찬에 상당시간을 할애했다. 자유당의 한 의원은 자유당이 연정에 참여한 것이 어떻게 경제회복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15분간에 걸쳐 설명했다.

총리나 각료들의 발언도 판에 박은 듯했다. “의원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라든가 “지적하신 사항을 잘 반영하겠다”는 답변이 계속됐다.

사정이 이쯤 되자 여당은 물론 야당에도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야당은 뭐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힘이 부족하더라도 국회에 나가 민의의 전당이 최소한 ‘아부꾼들의 경연장’이 되는 것은 막으라는 주문이다.

일본 거대여당의 폭주는 역설적으로 야당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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