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홍관/장기기증 통해 '생명' 나누자

  • 입력 2000년 2월 2일 19시 10분


9일부터 시행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안 시행령’은 장기이식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장기를 이식받을 자의 선정기준을 마련하고 뇌사를 합법화했다. 장기이식은 이상이 발생한 장기를 교체함으로써 생명을 연장하는 현대의학의 꽃이다. 한국의 의료수준도 빠른 속도로 높아져 50년 각막이식, 69년 신장이식, 83년 골수이식, 88년 간장이식, 92년 심장이식, 96년 폐이식이 이루어졌다.

장기이식을 활성화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장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기증되는 장기는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신장은 다행스럽게도 사람에게 두 개씩 있으며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기증이 가능하고 골수는 재생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신장이나 골수도 기증할 때 기증자가 겪는 고통 때문에 ‘몸에 칼 대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뇌사인정으로 이식 활성화▼

심장 간 폐 췌장 등은 적출하면 본인이 사망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상태에서 얻을 수 없으며, 사망한 뒤에 떼게 되면 빠른 속도로 상해 수술을 하더라도 성공률이 낮다. 따라서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얻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뇌사 상태는 뇌 전체가 죽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호흡도 마비되기 때문에 과거에는 곧바로 사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인공호흡기가 발달돼 뇌사 상태의 사람도 맥박과 혈액순환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논란이 생긴 것이다. 뇌사 상태의 사람은 절대로 소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자체를 사망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뇌사를 찬동하는 측의 주장이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뇌사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불법으로 장기이식이 이루어졌지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묵인해 오고 있었다.

뇌사는 한국에서도 매년 2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뇌사가 합법적으로 인정되면서 간 심장 폐 췌장 이식이 활발해질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본다. 다만 뇌사자 대부분이 생전에 장기기증 의사 표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의 동의만으로 장기기증이 이루어지고 있어 계속 논란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운전면허증이나 주민등록증에 장기기증 의사 표시를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장기이식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문제는 장기 배분의 공정성이다. 법안에 의하면 전국을 서울 경기 강원 제주의 1권역, 충청과 호남의 2권역, 영남의 3권역으로 나누어 권역별로 장기이식 희망자를 등록하고 이식 가능한 장기가 발생할 때마다 의학적 응급도, 이식 대기시간, 혈액형, 나이 등을 고려해 공정하게 국가가 관리하여 이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병원별로 임의로 시술이 이루어지던 것에 비하면 공정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진일보한 대목으로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이 대목에서 장기이식의 수술비용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간이식의 경우 모든 치료비용을 합하면 8000만∼9000만원이 들기 때문에 결국 장기기증이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의 생명연장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뇌사자의 입원과 살아 있는 사람의 신장이식에 대해서는 의료보험 혜택이 주어져 왔으나 뇌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장기적출 및 이식 수술에는 의료보험 혜택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뇌사가 합법화됨에 따라 이들 시술에도 의료보험 혜택을 주는 방안을 보건복지부가 마련 중이라고 하니 기대해 볼 일이다.

▼배분과정 공정성 확보를▼

또한 뇌사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장기나 생명이 경시된다든지, 소생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뇌사자로 잘못 판정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아직도 남아 있다. 현재 뇌사 판정은 의료인 변호사 그리고 학식과 사회적 덕망이 풍부한 사람이 포함된 뇌사판정위원회에서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문제도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필요한 대목이다.

예전에는 의료기관에서 수혈용 피가 부족해 피를 사고 파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헌혈이 늘어나 매혈이 불필요한 상태가 됐다. 뇌사가 인정되고, 장기이식이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지금 우리 사회는 장기기증 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서홍관<인제의대 교수·의료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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