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루그먼칼럼] 유로하락 개입않는게 좋아

  • 입력 2000년 1월 31일 20시 22분


미국인들은 예로부터 달러화 가치의 당락에 대해 매우 느긋한 자세를 보여왔다. 일본 엔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져도 미국인들은 미국의 경제적 위신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유로랜드(유로를 공동 화폐로 채택한 유럽연합 11개국)는 미국처럼 거대한 경제적 단위여서 상호 교역이 무역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경제적 기초 여건만을 놓고 볼 때 유로랜드 국민이 통화 가치의 등락에 대해 미국인처럼 무관심해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난해 1월 도입 당시 1.17달러나 됐던 1유로의 가치가 지난주 1달러 이하로 떨어지자 많은 유로랜드 국민은 비탄의 울음을 터뜨렸다. 경제학적으로 따져볼 때 유로랜드 국민은 슬퍼할 이유가 없다. 유로 도입의 성패는 △유럽 시장의 통합을 가져올 수 있을지 여부 △유로랜드 국가의 경제적 안정을 지속시킬 수 있을지 여부 등 내부적이고 장기적인 경제적 성과에 달려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유로의 도입은 매우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좋은 출발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유로 출범 첫 해 대부분의 유로랜드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단지 미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더 빨라서 달러당 유로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인과 같은 ‘유로 맹신자’들은 유로 도입의 목적을 달러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미국의 콧대를 꺾는데 두고 있다. 유로가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위협하면 유럽이 경제적으로 더욱 번영할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2005년에는 러시아 마피아들이 100달러 대신 100유로로 뇌물을 줄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유로화 가치 하락에 따라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 도입의 목표를 희생해서라도 유로의 체면을 세워줄 것인지, 아니면 자존심은 좀 상할지 몰라도 유로 도입의 목표를 고수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상황을 맞았다.

유로화의 가치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유로랜드의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유로의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유로화의 가치는 더욱 떨어질지도 모른다.

ECB의 올바른 선택은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 얼마간은 유로화 가치가 얼마까지 떨어졌다는 등의 기사가 각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지만 한두달 뒤에는 유로랜드가 계속 건재하다는 것을 알고 모두 이 일을 잊어버릴 것이다. 문제는 ECB가 개입하지 않을 만큼 용기가 있느냐이다.

<정리〓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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