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저항권과 불복종운동

  • 입력 2000년 1월 21일 20시 12분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 공권력 행사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저항권’이라고 한다. 이 개념은 중세 유럽에서 태동한 뒤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과 궤를 같이해 왔다. 오늘날 민주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권력분립 사법권독립 언론자유 탄핵제도 등은 저항권 행사에 의해 쟁취된 것들이다. 현재 저항권을 헌법에 명문화한 나라는 많지 않다. 민주화 추세에 따라 독재자에 의한 압제 가능성이 적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전문의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구절을 저항권 근거규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저항권은 국가체제의 변혁을 가져오는 ‘혁명권’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16세기 프랑스에서의 ‘모나르코마키(Monarchomachi)’다. 신구교(新舊敎)간 극한대립으로 내란상태로까지 갔던 시절 신교인 칼뱅파가 내세운 반(反)군주이론이다. 군주와 인민 사이에는 ‘보호와 복종’이라는 ‘통치계약’이 체결돼 있는데 이를 어긴 군주는 마땅히 인민의 살해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 후 17세기 영국의 존 로크도 정부와 인민의 사회계약설을 주장하며 저항권을 인정했다.

▷저항권은 1776년6월 버지니아 권리장전, 같은 해 7월 미국독립선언, 1789년8월 프랑스인권선언, 1793년6월 프랑스헌법 등에 ‘인권’의 한 형태로 명문화됐다. 저항권은 명문화 여부와 관계없이 오늘날 민주국가에서 당연한 국민의 권리로 통하면서도 행사방법의 문제가 남아 있다. 버지니아 권리장전은 이에 관해 ‘공공복지에 최대한 공헌하는 방향’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특히 저항권 행사는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인정된다. 어쨌든 저항권 개념은 실정법을 뛰어넘는 자연법 사상, 즉 법철학의 범주에 속하는 문제다.

▷낙선운동을 위법으로 해석한 선관위 결정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불복종운동에 나섰다. 시민단체들은 이 운동을 가장 온건한 저항권 행사 방법으로 보고 있다. 비폭력에 의존하는 것부터 그렇다는 것이다. 역사상 이 부문의 대가(大家)는 역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 킹이다. 우리 헌정사에도 저항권 또는 시민불복종운동의 성공사례는 적지 않다. 이 운동에는 늘 무정부주의의 위험성이 따라다닌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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