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송기도/칠레의 '변신' 눈여겨보자

  • 입력 2000년 1월 19일 20시 13분


칠레 역사상 처음으로 치른 16일 결선투표에서 라고스 후보가 51.32%를 얻어 48.68%를 얻은 라빈을 어렵게 제치고 21세기 칠레를 이끌어갈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 작년 12월12일 시행된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사회당의 라고스 후보와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보수 우익연합의 라빈 후보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백중세를 보였다. 라고스 후보가 47.96%를 얻어 47.52%를 얻은 라빈 후보를 0.44%포인트차로 앞섰지만 과반을 넘지 못해 2000년이 시작되자마자 결선투표를 치르게 된 것이다.

라고스 정권의 탄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 칠레 정치사상 선거를 통해 두 번째 사회주의정권이 탄생했다는 점이다. 1970년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정권은 1973년 ‘인간 도살자’라는 악명을 떨친 피노체트의 무자비한 유혈쿠데타에 의해 무너졌다. 이후 칠레국민은 18년 동안 피노체트의 철권통치에 숨죽이고 살았다. 그러나 피노체트가 물러난 지 10년 만에 다시 사회당 주도의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아옌데 정부에서 칠레 대표단의 일원으로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경제전문가로 활동하고 피노체트의 독재에 저항해 반정부활동을 하다 투옥됐던 라고스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둘째, 라고스의 당선은 중남미에 불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새로운 변화를 확인해주었다. 80년대 들어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용했다. 민영화와 해외자본의 국내유치, 그리고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향상을 최우선으로 한 신자유주의정책은 국내 경제의 활성화와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소득 분배가 더 악화돼 중산층이 몰락해갔으며 실업자가 양산되었고 또 수많은 국부가 외부로 유출되었다.

‘시카고 보이스’라고 불리는 피노체트 정권의 경제관료들은 프리드먼 교수의 통화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칠레 경제에 적용해 부분적인 성공을 달성했다. 90년 민주화 이후 들어선 아윌린 정부와 프레이 정부는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다. 연평균 7%의 경제 성장과 한자릿수의 낮은 인플레를 보였던 칠레경제는 지난 20여 년간 중남미의 발전모델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칠레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그리고 국민은 이같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 1년 이상 영국에 구속돼 있는 피노체트는 라고스가 이끄는 사회당 주도의 정권에서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피노체트의 심판은 국제적으로도 인권문제와 관련돼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어쨌든 이번 선거 기간 98년 11월부터 영국에 구속돼 있는 피노체트 석방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라고스 후보는 피노체트가 칠레 법정에서 사법판결을 받아야 함을 분명히 했다.

21세기의 칠레는 라고스가 이끄는 사회당 정부에 의해 이끌어지게 됐다. 아윌린과 프레이정부에 의해 수행됐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부분적으로 수정될 것이다. 물론 미국을 의식해 제한적이긴 하겠지만 새로운 변화가 나타날 것이고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주요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더욱 강화될지도 모른다.

21세기에는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중남미국가들의 연대가 보다 공고해질 것이다. 우리도 이제 미국을 통해 중남미를 ‘접속’할 것이 아니라 직접 접촉을 강화함으로써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해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퍼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눈여겨 살펴봐야 한다.

송기도(전북대 교수·중남미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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