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176)

  • 입력 1999년 7월 23일 18시 17분


그러나 교도관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큰 범치기가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해주는 게 최대한 봐주는 것이라 그 동안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일도 묵인해준 셈이었다. 이튿날 운동시간이 되어서야 사동 앞 마당에 나갈 수가 있었는데 밤새 눈이 내려서 검둥이의 시신은 흔적도 없이 묻혀버렸다. 눈을 치우고서야 검둥이를 찾아냈지만 목 아래 큰 상처가 있었고 사방에 피를 흘려 놓았다. 아마도 구역 싸움이나 수컷에게 당한 모양이었다. 영선에 있는 늙은 장기수가 신경통에 좋다고 양동이에다 푹 고아 먹겠다는 것을 다른 재소자들이 용납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검둥이를 캐시밀론 방한복 내피에 싸서 라면박스에 넣으면서 늙은이를 몰아세웠다.

심뽀가 저러니 바라지허는 새끼 하나 웁시 여기서 팍 찌그러졌지.

얀마 너 머라구 그랬어?

꼰대가 죽을라구 환장했다구 그랬다 왜. 얘는 우리 사동 전체가 금이야 옥이야 키워서 시집까지 보냈는데 말허자면 영감 손녀여. 이 앨 삶아 먹구 몇년을 더 살아봤자 뼁끼통에 거름 보탤 일 밖에 뭐가 있느냐 이거여.

어쨌든 온갖 종류의 죄를 저지른 이들이 감옥 주변의 미물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일이 기묘했다. 나는 코뿔소 같은 뿔이 달린 하늘소 종류의 시커먼 곤충을 몇 달 동안이나 기르는 이도 보았고 심지어는 개구리를 플라스틱 통에 넣어 두고 정성들여 파리를 산 채로 잡아 먹여 기르는 경우도 보았다.

나도 목욕실에 다녀오다가 취장 소지들에게서 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얻었다. 회색 바탕에 검은 줄 무늬가 있는 놈이었는데 암컷이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검둥이의 새끼가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내 독방으로 데려오자 고양이는 한달음에 비좁은 방을 몇 바퀴나 돌며 확인을 하고나서 자꾸만 식구통쪽을 긁으며 시끄럽게 울어댔다. 아마 취장 마당을 뛰어 다니다 좁은 독방에 갇히니 저도 몹시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먹을 것을 주어 달래기도 하고 따뜻한 잠자리에 품어 주기도 하며 일주일쯤 데리고 있었는데, 운동시간에 나갔다 돌아오니 책상다리에 묶어 두었던 줄은 끊어지고 식구통 쪽문은 열린 채 고양이는 없어졌다. 재소자 신세라 소내의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닐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쓸쓸해진 마음만 삭이고 혼자 잤는데 며칠 후에 공안수 운동장인 사동 사이의 빈터에서 고놈을 보았다. 담벽 아래로 얼룩이가 슬슬 걸어가고 있었다. 목에다 내가 매어 주었던 비닐 끈을 두어뼘쯤 매단 채로 가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며 얼룩아, 하고 이쪽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달려들자 날카로운 눈을 들어 힐끗 보고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잽싸게 철조망이 쳐진 언덕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고양이의 야멸찬 기색은 나의 조건이며 존재며를 그대로 실감하게 하였다. 하늘의 구름 한 점처럼 무심한 사물들 틈에 혼자 있다.

나중에 엄정 독거를 시킨다고 이층이 비어 있는 사동의 복도 끝 방으로 옮겼을 때 나는 다시 정 붙일 것을 발견했다. 소내에는 비둘기들이 거의 백여마리 가까이 살았다. 그들은 무리를 나누어 교도소 안과 밖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밥 찌끼나 밭이랑의 이삭을 주워 먹고 살았다. 나는 다른 수인들처럼 사동 앞마당에 모이를 뿌려 주었고 비둘기들은 차츰 규칙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해서 내 방 창가에까지 날아와 앉기 시작했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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