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도정일/20세기말 한국의 「賤民문화」

  • 입력 1999년 5월 7일 19시 40분


한 시대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정신상태로 살았는가를 기술하는 것은 정신사의 작업이고 정신사는 문화사의 한 영역이다. 지금부터 백년쯤 뒤에 누군가가 20세기 말의 한국 문화사, 혹은 정신사를 쓴다면 그는 지금의 한국인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낼까? 원컨대 그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그토록 빨리 졸업한 백성은 일찍이 없었다”로 시작해 “당시 한국인은 불굴의 부족이었다”라고 써주었으면 좋겠지만 적어도 정신사에 손댈만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쓸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는 지금의 우리보다는 훨씬 냉정하고 객관적일 테니까.

이 미래의 한국인이 백년 전 한국인들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 그 정신의 내면 풍경을 일별하는 순간 그를 사로잡는 것은 그 풍경의 ‘경이로움’일 것이다. 모든 가용 자료와 기록물들에서 그는 20세기 한국인의 머리가 벌레 진흙탕 독극물에 점령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이를테면 한국인이 ‘부패’라는 이름의 벌레에 속속들이 파먹히고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큰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또 지역감정, 가부장제적 권위주의, 교만, 경박성, 파시즘, 약자 능멸 같은 고약한 것들이 목 잘린 지렁이떼처럼 한데 엉겨 한국인의 머리 속에 우글거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에게는 충격이다. “이건 머리가 아니라 진흙, 아니 지렁이 뭉치 아냐?” 20세기 말 한국인의 눈에 사람은 안보이고 오로지 ‘돈’과 ‘시장’만 보였다는 것도 놀라움이다.

그러므로 그의 문화사는 이런 진단을 내릴 것이 틀림없다. “20세기 말 한국인을 지배한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는 태도, 책략, 기술을 가치체계의 꼭대기에 두는 병리적 정신상태이다. 이 정신상태에서는 어떻게 사는가라는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타락 비리 기만 사기 비굴 폭력 타산 파렴치―이것들은 잘 사는 데 기여하는 한 결코 부도덕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다. 백년 전 한국인에게 사회는 사람이 속이지 않고서는 잘 살 수 없고 썩지 않고서는 잘 살 수 없다고 여겨진 사회이다. 이것이 당시 한국인의 세계관이자 정신상태이고 그것의 특징은 ‘천민성’이다. 20세기 말의 한국 문화는 천민 문화이다.”

그는 덧붙인다. “이 천민문화의 뿌리는 깊다. 그것을 결정적으로 만연시킨 것은 해방 이후 50년간 한국 사회를 이끈 정치와 경제, 그 쌍두마차의 범죄성 문화이다. 가치와 윤리의 문제를 전면 중단시키고 폐기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치 경제 두 영역에서의 타락문화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단을 얻기 위해 백년을 기다려야 한다면 그건 슬프고도 우매한 일이다. 문화 자체가 병들어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 문화의 문제이다. 병든 문화는 병든 인간을 생산하고 병든 사회관계를 재생산한다. 그 문화를 그대로 두고 한국의 21세기를 구상한다는 것은 의미 없다. 21세기, 아니 새 천년을 구상한답시고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사회가 문화의 갱신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만은 놀랍도록 무감각하다. 정치와 경제는 현대 한국인을 추악한 부족이게 하는 그 천민적 문화를 척결할 힘도, 그 척결을 사회적 의제로 규정할 능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 희망을 걸 곳은 사실상 시민사회 뿐이다. 시민사회는 문화의 갱신에 지금 힘을 쏟아야 할 때이다.

도정일〈경희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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