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32)

  • 입력 1999년 2월 5일 18시 25분


지금은 다 알고 있겠지만 윤희는 자신의 동행자를 고시공부 하는 애인이라고 소개했던 터였다. 순천댁이 먼저 입을 벌리고나서 자기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질렀다.

오메 오메, 이게 시방 누구여. 오 선생…오현우씨 아녀?

그네는 내 손을 잡고 두 손으로 연신 쓸어내렸다.

고생 많았지라. 헌디 은제 나왔다요 시상에…한 선생도 못보고.

순천댁이 나를 이끌어 마루 위에 앉혔다. 나는 마루 위의 벽에 액자처럼 걸려있는 사진틀을 공연히 올려다 본다. 그 안에 여러 장의 낡고 누렇게 퇴색한 사진들이 보였다. 그네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잠시 건너다보았다.

한 선생 동상되는 이가 한번 왔습디다. 어찌 해를 걸른다 함서도 어디 외국에 나간중 알었제. 이런 날도 못보고 어뜨케 눈을 감었으까.

나는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그네의 푸념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그러다가 담길쪽을 내다보며 한마디 했다.

여기두 많이 변했습니다.

암은, 변하다마다. 돈이 무섭지.

교감 선생님은….

그 양반 풍 때문에 고생 허시다 진작 돌아가셨소. 첫찌허구 둘채는 대처로 나가불고 시방 막내 덱고 안 사요. 조오 아래 토담 집이 우리 막내 메느래가 벌어 묵자고 허는디.

말수없고 두터운 안경을 쓸 정도로 근시에 약간의 약점이 있다면 술을 좋아하던 주인장은 인근 면의초등학교 교감 선생이었다. 나는 코가 뭉툭하고 눈이 가느다란 그이를 좋아해서 산 넘어 방죽으로 여러번 낚시를 갔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고시공부하러 온 사람이 아니란 것은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있었다. 언젠가 군에서 호구 조사를 나왔을 때 나를 집안 조카라고 변명해 준 적도 있었다.

어여 올라갑시다. 점심 밥은 자셨소?

예 진작에 먹었습니다. 그보다는 뒷채에 가보고 싶은데요.

으응, 거기 그대루 있제. 한 선생이 삼년 전에 싹 고쳐 놨소안. 그 집이랑 터앝은 오래 전에 그니가 사부렀고. 즈그 동상이 둘러보고 가기는 혔는디 어찌 할랑가는 우리도 모르지라.

순천댁이 앞장서서 문을 나가 본채의 탱자울 옆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에 들어섰다. 대 숲 사이로 뒷채 건물이 희끗희끗 들여다 보였다. 감나무 밤나무 오리나무 등속이 집 주변 여전한 자리에 낯익은 모습으로 서있다. 마당으로 들어선다. 원래 이 자리에는 샘이 없어서 내가 아침마다 물을 아래에서 길어오곤 했는데 거기도 상수도가 보였다. 시멘트로 턱을 만들고 나즈막한 물받이와 수채도 보였다. 순천댁은 공연히 수도를 틀어 보였다. 물이 콸콸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보소 겨울도 춥지 안응께 얼지도 않었네. 한 십년 다 되어가나, 동네서 돈 걷어갖고 샘도 파고 발동 뽐뿌도 들여놓고 혔는디.

마당에는 길게 자라난 잡초들이 누렇게 말라붙은채로 바람에 한들대고 있었다. 내가 공사를 했던 흔적이 보였다. 원래 이 집은 과일 저장고로 쓰이던 곳이었다. 우리가 기거를 하게 되면서 절반을 나누어 한 켠은 방을 들이고 나머지는 윤희의 작업실로 만들었던 터였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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