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 자식이 「왕따」라면?

  • 입력 1998년 12월 8일 18시 47분


학부모 다수가 자기 자녀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온 ‘왕따(왕따돌림)’현상이 누구에게도 ‘강건너 불’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올 한해 전국 초 중 고교에서 발생한 ‘왕따’사례가 4천여건에 이르며 피해 학생이 5천4백명이나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교육부 조사 결과 밝혀진 것이다. 이 통계는 교내 무기명 설문조사만을 토대로 한 것이므로 이들 말고도 얼마나 많은 학생이 크고 작은 집단따돌림에 시달리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들어 학교폭력이 다소 주춤해진 대신 ‘왕따’와 같은 간접 폭력이 급증하는 추세다. ‘왕따’로 지목해 따돌리는 대상도 전처럼 신체적 약점 등을 지닌 학생에 한정되지 않고 공부 잘하는 학생까지 포함된다고 한다. 괴롭히는 수법 역시 날로 잔인해지고 있다. ‘컴퍼스나 압정으로 손찌르기’ ‘우유에 설사약 넣기’ 등 도저히 어린 학생들이 하는 일로 믿기 힘든 것들이다.

피해 학생들은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말도 꺼내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결과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자살을 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라면 더 방치해서는 안될 일이다. 지금같이 빠른 확산속도라면 어느 누구도 피해자가 안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왕따’는 가해자가 다수이며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극히 비인간적인 ‘범죄행위’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왕따’로 몰린 피해자 가족들이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학교나 교육청을 찾아가면 십중팔구 ‘대화로 해결하라’는 식의 대답을 듣게 되는 점도 문제다. 교사들도 ‘집단따돌림을 학급에서 문제삼으면 오히려 괴롭히는 강도가 심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한발 물러서는 경우가 많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학교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학교와 교사가 주체가 되어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

‘왕따’는 교육분야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가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병리현상의 하나다. 입시스트레스, TV의 저질프로, 나와 다른 것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왜곡된 집단주의등 학교 외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피해자 가족들도 학교생활의 가벼운 갈등쯤으로 여기지 말고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절실한 것은 교사의 적극적인 해결의지와 카운슬링 시스템의 활성화 등 교육계 내부의 노력이다. 더 악화되기 전에 교육당국의 실효성있는 대책을 기대한다. 사회도 내 자식이 ‘왕따’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문제해결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