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차 작다고 깔봐서야

  • 입력 1998년 12월 4일 19시 11분


경차(輕車)를 타는 사람을 무시하는 풍조가 한심하다. 도로에서는 물론 음식점이나 호텔 백화점, 심지어 차량정비업소에서조차 사람 대접을 못받는다. 어디를 가나 자동차 크기가 신분의 상징처럼 잘못 인식돼 경차 이용자를 기분 상하게 만든다. 경차 이용자 10명중 8명이 무시당한 경험이 있다는 교통문화운동본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의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자동차문화와 비뚤어진 의식구조를 그대로 말해준다.

주행중에 다른 차가 함부로 끼여들고 주차장에서는 무조건 초보운전자로 취급해 깔보며 서비스업소 종업원들이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자동차를 생활필수품이 아닌 신분과시용 사치품으로 여기는 의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내실보다는 겉치레를 중시하는 물질만능 풍조와 시민사회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것이다. 똑같은 돈을 쓰는데도 고급승용차를 타야 칙사 대접을 받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현주소다. 유럽의 경우 국가원수급들조차 개인 차는 경차를 쓰는 절제된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9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도 경차가 꾸준히 늘어나긴 했다. 91년 4.2%였던 전체 승용차시장의 경차 판매비중은 96년 9.2%, 97년 8.4%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무려 32.7%에 이르렀다. 아마도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로 인한 경제위기 탓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경차 보급률은 약 5%에 불과하다. 소득수준과 주요 선진국의 20∼40%대에 이르는 보급률에 비하면 미미한 형편이다. 우리 생활 전반이 외형에 치중하는 풍조가 IMF시대를 부른 주요 원인의 하나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경차의 실용성은 잘 알면서도 남의 눈을 의식해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게 우리들이다. 사는 값과 유지비가 중형차의 40∼50% 정도밖에 안되는데다 관련세금과 보험료 고속도로통행료 주차료 등에서도 큰 혜택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로도 경차이용은 큰 이득이다. 달러를 쏟아붓다시피하는 에너지소비와 도로확장이나 주차장 확보를 위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절감할 수 있다. 경차 이용률을 높이려면 실질적 혜택의 폭을 더욱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저명인사중에도 경차 이용자가 더러 있으나 주변에서는 비아냥거리는 풍조마저 없지 않다. 경차 무시풍조를 추방하려면 우선 고위공직자를 비롯한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관용차를 경차위주로 과감히 교체하는 것도 검토해볼 일이다. 큰 차를 타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회분위기가 돼야 한다. 경차의 안전성을 높이는 자동차제조사들의 노력도 필수적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