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정훈/명동성당의 「어제와 오늘」

  • 입력 1998년 11월 30일 19시 30분


지난날 ‘민주화의 성지(聖地)’역할을 해왔던 명동성당이 지난달 27일 성당 구내에서 장기간 농성을 벌이던 농성자들의 천막을 강제로 철거했다. 그동안 힘없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서서 아픔을 어루만져주었던 명동성당이 대부분이 노동자인 농성자들을 내몰았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농성자들이 명동성당에서 이같은 대접을 받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성당 주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성당측에 따르면 농성자들은 성당 화장실을 멋대로 샤워장으로 사용하고 음식물 찌꺼기를 성당주변에 함부로 버려 신도들의 불만을 샀다. 농성자 중 일부는 인근 수녀원 담을 넘거나 성당안에 들어가 잠을 잤으며 농성은 제쳐두고 장기나 바둑으로 소일하거나 심지어 심야술판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명동성당은 이 때문에 미사를 진행하는데 적지 않은 차질을 빚었다. 당초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신자들의 시선도 차츰 차갑게 변해갔다.

신자들의 불만이 쌓여가자 성당측은 농성자들에게 14차례나 자진철거를 당부했다. 그러나 성당측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강제철거라는 최후의 수단이 동원됐다.

농성자들은 성당측의 강제철거에 대해 “철거당해도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며 다음날인 28일 다시 천막 4개를 세웠다. 성당측은 일단 직접적인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당 관계자와 다수의 신자들은 농성자들이 강제철거를 비난하기에 앞서 명동성당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명동성당은 단순히 공권력을 피하기 위한 도피장소가 아니라 ‘종교의식이 행해지는 성당이며 종교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정훈<사회부>hun3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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