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세청 거듭나야

  • 입력 1998년 10월 25일 20시 12분


조세행정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밑바탕에는 세정(稅政)에 대한 납세자들의 뿌리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세금을 흥정대상으로 삼아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긁어모은 이른바 세풍(稅風)사건은 징세권 악용의 극단을 보여준 것이지만 세무행정의 문제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권력자의 정적이나 특정업체를 겨냥한 세무조사의 남용도 그렇거니와 잘못된 기준에 따라 멋대로 부과한 ‘억울한 세금’이나 납세자와 짜고 세금을 중간에서 도둑질하는 세도(稅盜)들의 횡행도 더이상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그동안 납세자는 성실하게 세금을 내면서도 갖가지 불편과 불이익을 견뎌왔다. 까다로운 과오납의 구제절차는 말할 것도 없고 우편신고 기준일, 납세기한 연장, 환급세금의 이자계산, 원천징수 정산 등에 있어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이 많았다. 그러나 조세행정의 가장 큰 병폐는 세무당국의 징세권남용이며 그 다음이 관료편의주의적 세무행정일 것이다.

우리 헌법은 조세법률주의를 명문화하고 있다. 모든 세금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부과하고 거두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런데도 역대 정권때마다 국가재정에 충당해야 할 세금을 멋대로 깎아주고 정치자금을 거두는 불법행위를 자행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법에 의한 과세가 아니라 세무관청의 기본통칙이나 예규에 의한 세금부과와 징수도 여전히 관행처럼 되어 있다.

이래 가지고는 아무리 그럴듯한 조세법이 있어도 세무행정이 바로 설 수 없다. 더구나 세무공무원에게 가장 우선적인 판단규준인 기본통칙과 예규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한 국민의 재산권 피해와 세무행정의 난맥은 이만저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특정 납세자의 세금은 뇌물을 챙기며 깎아주고 그에 따른 세수 부족분은 다른 납세자에게서 메우는 세무행정이다보니 유전소세(有錢小稅)무전다세(無錢多稅)라는 비아냥마저 설득력을 갖는다.

조세행정이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국세청이 거듭나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 관건은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의 투명성 보장 등 제도적 장치 마련에 있다. 미국 국세청(IRS)의 중립성 확보를 위한 제도보완은 우리 국세청 개혁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세정개혁은 궁극적으로 국세청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다. 세무당국의 자의적인 법해석과 재량권 남용 방지, 근거과세 원칙을 위한 입증책임, 세금 과다징수에 대한 보상 및 제재, 내부고발 활성화 등의 세무행정 선진화와 납세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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