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훈/규제폐지의 「겉과 속」

  • 입력 1998년 10월 20일 18시 52분


산업자원부는 최근 확정한 규제정비계획안에서 규제폐지 비율을 21%로 잡았다가 발표를 보류하고 이를 50%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7월 산자부가 처음 보고한 규제폐지 비율은 겨우 9%였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규제50% 철폐 지시’ 이후 정부 각 부처의 규제폐지 비율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이같은 대통령의 엄명 후 부랴부랴 규제건수가 22건이나 되는 상품권법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16일 경제장관간담회에서도 참석 장관들은 한결같이 기존규제의 50% 이상을 철폐하겠다고 ‘뒷북’을 쳤다.

대부분의 부처와 관계 공무원들은 이전까지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된다며 ‘규제폐지 불가론’을 강력하게 내세웠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이같은 의견은 쑥 들어가버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규제폐지 반대론은 결국 관료의 권한 축소나 조직 축소로 연결될 것을 우려한 부처집단이기주의 때문이었다는 말인가.

규제개혁위 관계자들은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관은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차관은 ‘책임론’을 명분으로 내부조직의 동요를 막는데 더욱 신경쓰는 풍토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분야에서는 일률적으로 규제 50% 폐지가 불가능한 부처도 있고 무리하게 목표를 관철하려다보면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심각한 상황인 팔당호의 오염을 가속시킨 요인 중 하나가 김영삼(金泳三)정부 당시 팔당호 인근 준농림지역의 건축규제 해제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관료들이 제살을 깎아내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폐지해서는 안될 규제마저 폐지하는 사태가 벌어지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최영훈<정치부>c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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