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정훈/정도 지나친 「화형식」

입력 1998-09-09 19:20수정 2009-09-2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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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이탈리아에서 한 시민이 자신의 돈지갑을 슬쩍하려 한 집시소년의 팔을 부러뜨린 사건을 놓고 찬반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른 적이 있었다.

집시 소매치기 피해가 잦은 나라여서인지 적지 않은 시민들이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일각에서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를 두고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유죄를 선고, 사건을 종결지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8일 국회에서 집회를 열고 탈당의원 24명의 사진에 조의를 표하는 검은 줄을 씌우고 화형식까지 거행하는 것을 보고 새삼스레 이 사건이 떠올랐다.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당을 옮기는 철새정치인의 행태는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부족하지 않다. 또 피해자격인 한나라당이 동지로서의 의리를 저버린 탈당의원들을 강도높게 매도하는 격한 심정일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TV화면에 비친 화형식 장면을 본 국민의 반응은 엇갈렸다. 본보에 전화를 걸어온 어떤 독자는 “철새정치인들은 이 정도 모욕을 당해도 싸다”는 반응이었고 다른 독자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학생시위를 보는 것 같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이날의 화형식은 탈당의원들에 대한 ‘응징’과 향후 이탈이 예상되는 의원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여당티를 벗지 못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야성(野性)’을 자극하는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설령 여권의 정치행태가 정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야당의 화형식 역시 보복적 감정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지나쳤다는 느낌이다. ‘피해자의 항변 방식’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김정훈<정치부>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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