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너지는 種子 산업

  • 입력 1998년 7월 19일 20시 04분


국내 2위 종묘회사인 서울종묘가 작년 외국 종자회사 손에 넘어간 데 이어 최근 국내 1위와 3위인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도 미국의 세미니스사에 매각 합병됐다. 국내 종자업계의 ‘빅3’가 모두 외국회사에 넘어간 것이다.

이는 연간 1천5백억원에 이르는 국내 종자시장의 약 70%가 외국자본의 수중에 들어간 것을 뜻한다. ‘종자주권’을 잃었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사태는 작년 정부가 종자산업과 종자시장을 개방했을 때 예상됐던 일이고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국내의 크고 작은 50여개 종자업체들은 그동안 특화된 품목없이 시장점유율만 높이기 위해 제살깎기식 과당경쟁을 벌여 대부분 부실에 빠졌다. 몇년마다 한번씩 대형 종자사고를 내는 등 무책임한 경영과 영세한 자본력, 기술낙후도 몰락을 재촉한 원인이다.

이 때문에 업계와 학계 일부에서 외국 종자회사들의 국내시장 진입을 국내 종자산업의 체질강화와 외국의 첨단 유전공학기술과 판매망을 활용한 세계무대진출기회라며 반기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성공적인 외화유치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외국 종자업체의 국내시장 장악은 예삿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대대로 축적해 온 우리 고유의 유전자원과 육종기술 등 이른바 ‘생명자원’이 통째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최고수준인 우리의 고추 무 배추 육종기술과 유전자원이 고스란히 외국 종자회사에 넘어 가게 됐다. 외국회사가 가져간 씨앗을 우리에게 비싼 값에 되팔 가능성도 있고 종자가격 상승으로 농민의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다.

정부는 이 사태를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현재의 허술한 종자관리를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종자보존과 관리를 위한 전문인력과 예산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유전자은행도 늘리고 유전자원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현재 국내 종자은행이 보유한 토종종자는 2백여종에 불과하다. 미국의 8천6백여종, 일본 러시아의 1천여종에 비해 형편없이 적다. 이래서는 ‘유전자전쟁’이 본격화될 21세기에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종자 뿐만 아니라 우리의 토종식물들이 마구 외국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우리의 토종꽃과 나무가 외국으로 유출된 뒤 고부가가치를 지닌 신품종으로 개량돼 국내에 역수입되고 있는 현실은 유전자원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스레 일깨워 주고 있다. 국내 군소 종자업체들도 업종별 전문화와 상호협력체제 구축 등 자구노력으로 남아 있는 30% 정도의 국내시장을 지켜나가야 한다. 정부와 기업, 학계가 하나가 돼 우리 종자를 보호해야 한다. 유전자원 보존은 나라의 생명을 돌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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