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임채청/만만찮은 국내현실

  • 입력 1998년 6월 14일 19시 48분


8박9일간의 미국방문을 마치고 14일 서울로 돌아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수행원들은 꽤 들떠 있었다.

김대통령은 귀국 직전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때 처음부터 기립박수가 나오더니 스무차례나 박수가 나왔다. 그걸 보고 우리 국민, 교포들이 얼마나 기쁘겠나 생각하니 속으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13일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김대통령의 목소리는 자신에 차 있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뒤의 피곤함은 조금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는 개혁을 언급할 때마다 “미국에서는 모두 다 한국정부가 개혁을 잘하고 있다고 하는데…”라는 식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한국사회 일각의 개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의식한 말이었다.

수행원들도 개선장군 같았다. 이유는 충분히 있다. 김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최상의 찬사와 깍듯한 대접을 받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미수출입은행의 무역금융차관 제공과 활발한 투자상담 등 귀국선물 보따리도 불룩한 편이었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미국 사회가 김대통령에게 보여준 깊은 존경과 신뢰는 주로 불우했지만 꿋꿋이 외길을 걸었던 그의 개인적인 경력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의 한국이나 김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에 대한 진단에는 조심스러운 구석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또 아무리 접대가 풍성했어도 손님은 역시 손님일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얼굴을 하고 찾아온 손님에 대해서는 인심이 후한 편이기 때문이다. 주가 300선 붕괴 등 김대통령이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직면해야 할 한국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이제 여행의 흥분을 가라앉혀야 할 때다.

임채청<정치부>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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