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환경호르몬 공포

  • 입력 1998년 6월 1일 20시 10분


최근 미국유럽과 일본등을중심으로 ‘환경호르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각국마다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지금 ‘환경호르몬 공포에 휩싸여 있다’고 할 만큼 환경호르몬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환경호르몬은 생물의 체내에 흡수되면 여성호르몬과 같은 작용을 일으켜 본래의 호르몬 작용을 교란(攪亂)하는 인공 화학물질을 말한다. ‘외인성(外因性)내분비 교란물질’이라고도 부르는 환경호르몬이 동물의 생식이상을 일으킨다는 보고는 6, 7년 전부터 있어왔다. 동물과 어패류의 수컷이 암컷화하는 사례에서부터 인간의 생식이상 사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고가 있다. 지난 50년간 남성의 정액이 묽어져 정자수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92년 코펜하겐 보고와 일본의 20대 남성의 평균 정자수가 40대에 비해 절반정도에 불과하다는 최근의 연구보고가 그것이다.

국내에서도 남해안의 굴 등 어패류 생산량이 80년대에 비해 절반수준으로 줄어들었으며, 원인은 선박 밑바닥에 파래 등이 끼지 않도록 페인트에 섞어 칠하는 TBT라는 화학물질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경남 양산의 모전자제품회사에서 일하다가 95년 불임판정을 받은 남녀근로자 23명이 환경호르몬 피해자라는 주장이 나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반도체 세정제인 솔벤트 5200이 근로자의 생식기능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환경호르몬이 우리에게 더 이상 ‘강건너 불’이 아님을 말해주는 사례들이다.

현재까지 환경호르몬 ‘용의(容疑)물질’로 지목된 물질은 쓰레기를 태울 때 생기는 다이옥신과 DDT 등 농약류를 포함한 67종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폴리스티렌으로 만든 컵라면 등 일회용 식기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유아용 젖병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용기를 바꾸는 등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인류가 환경호르몬에 얼마나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사례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내년부터 환경호르몬에 대한 연구에 착수한다고 밝힌 것은 뒤늦긴 했으나 다행이다. 그러나 식약청의 자세는 너무 안이하고 조심스럽다는 느낌이다. 연구로 시간을 끌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외국에서 이미 확인된 환경호르몬 용의물질들이 국내에서 어떤 상품, 어떤 물건에 쓰이고 있는지를 즉각 공개해 국민 모두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이미 명백히 환경호르몬으로 밝혀진 공해물질들에 대한 규제조치를 서둘러 취해야 한다. 최근 국내에서 아기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불임 남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