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京회담 결렬 이후

  • 입력 1998년 4월 18일 20시 12분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남북 당국간회담이 일주일간의 줄다리기 끝에 결국 결렬됐다.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양측은 그동안 남한의 대북 비료지원과 이산가족 찾기, 당국간 채널의 유지 등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모처럼 회담이 열렸을 때 또다시 휴전선 너머 고향과 가족친지가 떠올라 밤잠 설치며 가슴설레던 1천만 이산가족들의 실망은 크다.

회담결렬이 이처럼 많은 동포들을 가슴아프게 했지만 남한대표단이 끝까지 원칙을 견지한 자세는 옳았다. 이번 회담에서 남측은 북한이 요청한 비료지원을 다짐하면서 이산가족 면회소설치와 서신교환, 65세 이상 고령자의 고향방문을 제안했다. 이것이 분단으로 인한 고통의 가장 기초적 치료며 보편적인 인도주의 과제에 속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북측은 그러나 처음부터 한창 파종기에 절박한 비료를 얻어내는 것이 당면목표였다. 양측은 회담초기 두가지를 병행논의키로 했다. 당초 북한이 내놓은 의제도 ‘비료지원 문제 등 상호관심사’였다.

그러나 회담중반부터 북측은 면회소 설치의 구체적 시기 등을 논의하려 들지 않았다. 비료지원만 합의한 후 이산가족 문제는 적십자회담에 넘기자고 고집했다. 비료지원은 인도주의 문제지만 이산가족 찾기는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까지 등장시켰다. 우리 새 정부의 정경분리(政經分離)원칙을 들어 이산가족 찾기는 분리시켜야 할 정치문제라며 억지를 부렸다.

이같은 북한의 궤변때문에도 남북회담은 명확한 원칙과 룰이 필수적이다. 서로 사고(思考)가 다른 체제간 협상의 원칙은 상호주의다. 각각의 제안을 하나씩 교환 수용하는 것이다. 바로 이같은 원칙 아래 양보와 타협을 쌓아갈 수밖에 없다. 남측이 북한의 비료요청에 응하면 북측도 남한의 면회소설치안을 받아주어야 상호주의다.

93년 김영삼(金泳三)정부가 이인모노인을 조건없이 북한에 송환하고 95년 쌀도 보냈지만 그후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는커녕 더 후퇴했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불신을 받게 된 것도 이때문이다. 이같은 경험으로 보아도 조건없는 대북 비료지원은 남북관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북회담은 일회성 성과보다도 화해와 교류라는 ‘통일열차’가 굴러갈 튼튼한 궤도를 까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회담이 그저 낭비는 아니었다고 본다. 당국간 채널의 유지 필요성에 양측이 잠정적으로 의견을 같이했으며 오랜 협상기간 상당한 인내심도 보였다. 지금 남북협력이 시급한 쪽은 누가 보아도 식량난과 경제난에 허덕이는 북한이다. 당국간 회담을 재차 열어 이산가족의 한도 풀어주면서 북한농민들이 비료사용에 실기(失期)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북한당국의 자세변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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