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노진귀/정리해고가 능사는 아니다

입력 1998-01-09 08:23수정 2009-09-2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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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일자 본보 17면 ‘시론’에 실린 김영배 경총 정책본부장의 “정리해고 조기시행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해 한국노총측이 보내온 반론입니다.》 현 경제위기의 요인이 어디에 있는지가 분명함에도 또다시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달러가 들어와야 하고 달러가 들어오기 위해서는 ‘정리해고제’가 즉각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등식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운명이라고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내용의 정리해고가 요구되고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태다. ▼ 생산적 협력 분위기에 찬물 ▼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국제통화기금(IMF)은 빌려준 돈을 받아내는 것이, 그리고 외국 투자가들은 높은 투자수익을 얻어내는 것이 주요 관심사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정리해고제란 고려해 볼 수 있는 여러가지 요소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반드시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정리해고는 단기적으로 노무비 삭감에는 기여할지 모르지만 근로의욕이나 애사심에는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적 갈등을 고조시킴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키고 국가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도 있다. 더구나 토양이 미국과는 전혀 다른 우리나라의 경우 정리해고의 부정적 영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사회보장도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은 그 나라 문화나 제도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타제도의 급격한 이식은 혈액형이 A형인 사람에게 B형의 피를 수혈하는 것과 유사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결국 정리해고제 도입은 노사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켜 지금 조성되고 있는 생산적 협력의 분위기에 먹칠을 할 우려도 있다. 또 우리나라는 지금 정리해고가 전혀 불가능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대법원 판례와 노동부 지침에 따라 정리해고가 이미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노동자의 46%는 기업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일용 임시직 노동자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가 요구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국가 중 독일이나 일본과 함께 중간정도 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IMF는 왜 구제금융 제공의 조건으로 유독 우리나라에 대해서만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요구하는 것인가. 미국의 동북아 경제기지 확보 전략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도 한 요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 우리나라 학자들 거의 모두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너무 경직적이라고만 탁상공론해 왔다. 우리나라 노동시장도 상당히 유연하다는 주장들이 부분적으로 나온 것은 불과 얼마전부터이다. 때문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경직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외국에 대해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있는 그대로 이해시키는 노력을 다했어야 했다. ▼ 우리 노동시장 제대로 알려야 ▼ 외국 투자가들이 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투자수익률이지 정리해고제 존재여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국 투자가들은 IMF금융 이전에도 우리나라에 투자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투자조건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일례로 달러표시의 노무비는 환율변동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30%이상 삭감되었다. 노동자들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단결하고 있다. 동기만 부여되면 노사관계도 협력적으로 전환될 것이다. 외국 자본이 투자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외국에 대해 이런 측면을 충분히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리해고 이외의 방법으로 투자매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또 일부 외국 정부나 외국 투자가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악용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노진귀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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