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 칼럼]정보의 지역화

  • 입력 1997년 6월 2일 07시 45분


백열전구는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했을까, 아니면 조지프 스완경이 만들었을까. 우리 회사가 발매한 CD롬 백과사전인 엔카르타의 미국판에는 에디슨에 대한 항목은 있으나 스완경에 관한 항목은 없다. 미국판은 그저 「1878년과 1879년 영국의 발명가 조셉 스완과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각각 탄소필라멘트 전구를 개발했다」는 문장을 넣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팔리는 엔카르타는 약간 다르다. 거기에는 스완에 대한 항목이 있으며 「1878년에 그는 탄소로 만든 선을 이용, 진공상태에서 최초의 전깃불을 밝혔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화를 발명한 사람은 미국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일까, 아니면 이탈리아계 미국인 안토니오 메우치일까. 미국판과 영국판은 모두 벨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미국판의 3만여개 항목과 영국판의 2만8천여개 항목 어디에도 메우치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곧 출시될 이탈리아판에는 그가 1854년 기초적인 형태의 전화를 개발, 1871년 미국 특허청에 예비서류를 냈다는 얘기가 실릴 것이다. 또 「1876년 또다른 발명가 벨이 비슷한 장치에 대한 특허를 따내 명성을 얻었으나 메우치는 가난 속에 죽었다」는 내용도 덧붙이게 된다. 사실은 주관적이다. 나는 세계시장에서 엔카르타 백과사전을 각국판으로 지역화하면서 이같은 교훈을 배우고 있다. 엄청난 양의 내용을 전세계 독자들에 맞춰 지역화하는 일은 정말 나의 눈을 새롭게 뜨게 해 준 작업이었다. 이같은 일에서 영어로 된 원문을 단순히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 나라의 문화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해석방식을 갖고 있어 우리는 그 지역의 시각을 가져야만 한다. 실례로 엔카르타의 미국판에는 남북한에 관한 항목이 46개 있는 반면 일본판에는 2백16개나 있다. 한국 관련문제는 한국전문가들이 감수하고 중국에 관한 부분은 중국전문가들이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가야」라 부르고 일본에서 「미마나」로 부르는 한국 남부지역이 3세기와 4세기 일본에 점령됐다고 잘못 적었다가 한국민의 격분을 불러일으키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백과사전에서 국경분쟁은 골치아픈 문제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분쟁지역을 표시할 때는 국경선을 점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에 대해 영국판은 「전쟁에서 승리해 포클랜드제도를 계속 차지했다」고 서술하고 있으나 스페인어판은 「말비나스섬은 유럽 식민주의의 마지막 유물로 남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지역판을 다르게 낸다해도 엔카르타의 국제판이 인터넷에 뜨게 되면 독자들 가운데는 화를 낼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 독자가 일본판에 접속하면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다. 프랑스인 독자는 영어판이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의 참패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에 분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다양하고 세계적인 관점에 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인은 중요한 문화적 과학적 사건에 대한 아시아와 유럽의 시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정리〓김홍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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