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李箱(이상)이 서울 종로에 「제비」다방을 차린 것은 1933년이었다. 얼굴마담은 「보들레르의 흑인 혼혈 정부 잔 뒤발의 성적 매력」을 지닌 錦紅(금홍)이었다. 그는 어두운 다방 뒷방에서 금홍과 동거하며 대표작 「날개」를 썼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제비다방이 문을 닫은 뒤 이상은 「쓰루」(鶴) 「무기」(麥) 「씩스나인」(69) 등 다방을 개업했으나 모두 망했다
▼1920년대 이래 50년대까지 다방은 커피 홍차를 마시며 음악을 즐기던 휴식의 장소이자 문화예술인들이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철학과 인생을 논하던 문화공간이었다. 6.25피란시절 문화예술인들의 좌절을 그린 金東里(김동리)의 「밀다원시대」의 무대도 부산 광복동 밀다원다방이었다. 문화시설이 부족하던 그 시절 다방은 작가들의 토론장 집필실 음악감상회장 그림전시장이었으며 출판기념회와 문학 영화의 밤이 열리던 종합예술관이었다
▼해방 당시 60여개에 지나지 않던 다방이 규모가 커지고 문화공간에서 상업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다방의 주인도 지식인계층에서 상인계층으로 바뀌고 레지 카운터 주방장에 디스크자키까지 등장했다. 최근에는 일부 지방에 티켓다방이 번지고 대도시에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커피전문점이 늘면서 「재래식」 다방은 한가한 노인들의 연락장소로 변했다
▼이 다방이 다음달부터 이름조차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다방업중앙회가 다방 이름을 휴게실로 바꾸고 시설도 차나 음료뿐 아니라 간단한 식사까지 제공하는 종합휴게공간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세태변화에 밀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눈 내리는 겨울 길가로 창을 낸 다방에서 뜨거운 커피잔으로 손을 녹이며 사색에 잠겼던 경험을 가진 세대로서는 다방에 대한 향수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