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빙판, 남북은 뜨거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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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아이스하키 역사적 대결… 박예은-조수지-이은지 릴레이골
한국, 北 3-0으로 꺾고 4연승… IIHF 파젤 회장 깜짝 시구
해외언론 50여곳도 취재 열기

조수지 ‘환호’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조수지(왼쪽에서 두 번째)가 6일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그룹A(4부 리그) 북한과의 경기에서 1피리어드에 2-0을 만드는 추가 골을 터뜨리고 두 팔을 치켜들며 환호하고 있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조수지 ‘환호’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조수지(왼쪽에서 두 번째)가 6일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그룹A(4부 리그) 북한과의 경기에서 1피리어드에 2-0을 만드는 추가 골을 터뜨리고 두 팔을 치켜들며 환호하고 있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관심 폭발이었다. 6일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그룹A(4부 리그) 한국과 북한의 대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7000명의 관중을 수용하는 강릉하키센터에는 개장 후 최다인 58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인터넷 예매로 나눠주는 6000석의 티켓이 하루 전 일찌감치 매진돼 만원 관중도 기대했으나 늦은 경기 시작 시간(오후 9시) 탓인지 자리를 모두 채우진 못했다. 하지만 경기장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사무국의 평창 올림픽 불참 선언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IIHF의 르네 파젤 회장(스위스)도 이날 경기를 보기 위해 방한했다. 파젤 회장은 다음 주에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NHL 사무국과 재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파젤 회장은 이날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과 함께 경기 전 양 팀 선수들이 도열한 가운데 퍽 드롭(퍽을 빙판에 떨어뜨리는 것)을 했다. 프로야구에서의 시구에 해당한다.

국내외 언론의 취재 경쟁도 뜨거웠다.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이날 경기를 보기 위해 미리 출입증을 신청한 해외 언론은 모두 46개사 79명이나 됐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사전 취재 등록을 하지 않고 현장에 찾아온 언론사를 포함하면 50개 이상의 해외 언론사가 이날 경기를 취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P, AFP, 로이터 등 서방 언론뿐 아니라 중동 매체인 알자지라도 취재 전쟁을 벌였다. 한국 언론까지 더해 200여 명의 취재진이 모였다.

경기 시작 40분 전인 오후 8시 20분 양 팀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빙판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응원석은 함성으로 가득 찼다. 평소 200여 명이던 남북공동응원단은 이날은 개성공단 기업인 및 금강산기업인회 임원들까지 합류하면서 5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태극기와 인공기가 함께 걸린 경기장에서 경기 내내 “우리는 하나다”, “통일조국” 등의 구호를 외치며 양 팀 선수들을 한목소리로 응원했다.

한국 땅에서 처음 열린 아이스하키 공식 남북 대결이었던 이날 경기의 승자는 한국이었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전력 보강에 나선 한국은 불과 몇 해 전까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북한을 시종 압도했다.

한국은 1피리어드 8분 13초에 박예은이 선취골을 터뜨렸고, 약 3분 뒤엔 조수지가 추가골을 넣었다. 2피리어드 종료 직전에는 이은지의 골이 터졌다.

한국은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따라붙은 북한을 3-0(2-0, 1-0, 0-0) 으로 꺾고 지난해 세계선수권 4-1 승리에 이어 2연승을 거뒀다. 이번 대회 4연승 행진을 이어간 한국은 역시 4전 전승을 거두고 있는 네덜란드와 8일 우승을 놓고 일전을 벌인다. 이 경기에서 이기는 팀은 다음 시즌부터 디비전1 그룹B(3부 리그)로 승격한다.

경기 후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은 북한 진옥에게, 문용선 북한 대표팀 단장은 한국의 이은지에게 각각 경기 최우수선수(MVP)상을 시상했다. 이후 승리 팀 한국의 태극기가 게양되는 가운데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한국과 북한 선수들은 빙판을 떠나기 전 기념사진을 찍으며 역사적인 경기를 추억으로 남겼다. 양측 선수들은 악수를 한 뒤 차분히 헤어졌다. 일부는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남과 북이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어울린 이날은 때마침 유엔이 제정한 ‘발전과 평화를 위한 국제 스포츠의 날’이기도 했다.
 
강릉=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박예은#조수지#이은지#여자아이스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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