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김기태 감독의 삭발, 본인은 아무 의미 없다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1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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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그랬다. 다른 의미는 없다.”

30일 SK와의 광주 경기에 앞서 머리를 바싹 밀고 그라운드에 나타난 김기태 KIA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도 “나만의 스타일”이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김 감독에겐 그만의 스타일이 있다. 김 감독은 전지훈련 지의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도 선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찢어져서 30바늘 정도는 꿰매야 부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도 농담처럼 한다. 그런 그에게 삭발정도가 뭐 대수겠는가. 선수 시절에도 그는 종종 삭발을 했다. LG 수석코치를 맡았던 2011년에도 머리를 하얗게 밀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후배들이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동참해달라고 해서 삭발을 하고 운동장에 나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나만 머리를 빡빡 밀었더라”고 농담조로 말한 적이 있다. 2012년 지휘봉을 잡았던 LG 선수들이 단체로 삭발한 모습을 보고는 “나도 여러 번 해 봤지만 별로 권할 것 못 되더라”며 웃어넘기기도 했다.

김 감독의 반응은 이번에도 비슷하다.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분위기를 심각하거나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수장의 삭발은 큰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 35년 역사에서 삭발한 감독을 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김 감독이 삭발을 통해 선수단에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절실함이다. KIA는 요즘 SK, LG와 치열한 4위 싸움을 벌이고 있다. 매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요동친다. 포스트시즌 진출과 탈락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체력이 떨어진 요즘 같은 시점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누가 더 절실하게 이기려 하느냐는 것이다.

항상 무덤덤하게 보이려 애쓰지만 김 감독의 머리 속은 항상 복잡하게 돌아간다. 지난해 3피트 라인 항의를 하다가 그라운드에 드러누운 것이나(이 때 눕기태란 별명을 얻었다), 3루수를 포수 뒤에 위치시키는 기상천외한 시프트(규칙 위반으로 실행하진 못했다)를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으로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이다. 감독의 절실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다.

김 감독과는 반대로 메이저리그에서는 없던 머리카락이 돋아난 선수가 있다. 9차례 올스타 선정에 빛나는 19년차 베테랑 카를로스 벨트란(텍사스)이다. 원래 민머리인 그는 지난 달 29일 클리블랜드전에서 단정한 헤어스타일로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알고 보니 그는 마커펜으로 머리를 검게 칠하고 나타나 주변 선수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것이었다. 텍사스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질주하며 잘 나가고 있다. 최고참급인 벨트란은 마지막까지 편하게 잘 해 보자며 서슴없이 스스로를 망가뜨린 것이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하는 야구에서 개성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김 감독과 벨트란은 모자를 벗었을 때 드러나는 머리카락으로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바로 ‘팀 퍼스트’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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